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나는 조용필이 고맙다. 진심이다. 그가 나에게 돈을 준 것도 아니고 밥을 사 준 적도 없다. 하지만 그가 진심으로 고맙다. 그의 노래, 음악을 듣고 자란 행복한 청춘 시절이 있었고 그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 바이러스가 온 몸에 퍼지기 때문이다.

가왕(歌王), 영원한 오빠, 작은 거인. 조용필을 규정하는 변함없는 단어들이다. 환갑에 접어 들었지만 그의 음악은 여전히 발전하고 있으며 열정은 오히려 더 뜨거워지고 있다. 음악으로 세월을 함께한 이들에게 던져주는 용기와 희망이다. 그래서 고맙다.

최근의 소아암 환자를 위한 공연도 그렇지만 그는 베푸는 삶을 살고 있다. 꼭 필요한 장비 몇 가지만 챙겨들고 소록도를 찾아 한센인들을 위한 소박한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고 한다. 고마운 일이다.

그는 여전히 겸손하다. 가왕이란 타이들이 주어졌지만, 자신은 오랜 세월 변함없이 활동하는 가수일 뿐 시대를 넘어선 최고의 가수는 아니라고 했다. 겸손은 우리가 두고두고 배우고 익혀야 할 덕목 아닌가.

그가 이토록 오랜 동안 최고의 자리를 지켜온 비결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그는 음악 본연의 가치에 충실했다. 대중들을 끊임없이 새로운 음악의 세계로 이끌면서도 오랜 세월 생명력을 잃지 않았던 것은 기본이 탄탄했기 때문이다.

그는 가수들 사이에서도 진정 ‘노래 잘 하는’ 가수로 꼽힌다. 입만 벙긋거리며 현란한 춤과 요란한 무대장치에 기대 이른바 퍼포먼스를 펼치는 요즘 가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는 또 스스로 곡을 만들 줄 알고 연주하는 능력까지 갖췄다. 자신의 스타일과 음색에 맞는 곡을 만들고 그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완성시킬 수 있는 연주를 버무려 최고의 음악으로 내놓는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 끊임없이 진화한다. 민요에서부터 트로트, 록 등 장르를 두루 아우르면서 음악 세계를 변화시키고 발전시켜 온 것이다. 최근 어느 신문 인터뷰에서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조용필답게 사는 법이라고 했다. 대중들이 그의 새 앨범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는 이유다.

연 평균 2만 곡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이다. 수치상으로는 경이로운 현상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한 해 시중에 유통되는 정규 음반은 1천 장을 넘지 못했다. 컴퓨터 등 첨단 기기의 발전에 힘입어 대중가요는 양적 생산력에서 눈부신 비약을 한 셈이다.

그럼에도 공감과 감동은 오히려 예전보다 못하다. 한 해 2만 개 넘는 신곡이 홍수처럼 밀려나오지만 정작 대중들의 가슴을 울리고 그래서 모두가 한 호흡으로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곡은 드물다. 풍요 속의 빈곤이다.
동 시대를 살면서 함께 공감하고 동질감을 느끼고 사회적 연대감을 갖게 하는 요인 중 하나는 추억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미 청춘이 흘러가 버린 올드 세대들에게는 조용필이라는 추억이 있다. 과연, 요즘 세대들에게 올드들의 조용필 같은 추억은 무엇일까.

리포트 하나 쓰기 위해 묵은 책을 뒤지고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품을 팔던 아날로그 시대에는 대중가요 하나를 만드는 데도 장 담그듯 공을 들였다. 영감이 필요했고 그것을 풀어내는 데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는 도깨비 방망이처럼 뚝딱 하면 새로운 곡 하나가 만들어진다. 만들기 쉬운 만큼 소비도 일회성 단발로 끝나고 만다. 대량 생산 을 가능케 한 디지털 세상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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