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19일 경기도 과천교회에서 시온기독교선교센터 제105기 1반 수료식에서 이만희 총회장이 수료생들을 격려하며 설교하고 있다. (제공: 신천지예수교회)

신천지예수교 이만희 총회장
왕가 자손, 효령대군 19代孫
하늘지시 따라 신앙생활 시작 

신천지, 84년 창립 후 급성장
기성교회ㆍ기독언론 비방 지속

수없이 고소당했지만 ‘무혐의’

[천지일보=송태복 기자]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예수교회) 창립자 이만희 총회장(87). 한국에 천주교·개신교가 들어 온 이후 수많은 교단이 흥망성쇠를 거듭했지만, 그처럼 주목 받고 견제 받은 종교지도자는 없었다. 이 총회장이 주목 받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창립한 신천지예수교회가 오직 ‘탁월한 성경교리’를 무기로 급성장하기 때문이다.

현재 신천지예수교인은 출석 기준으로 20만명이 넘는다. 성경공부부터 최소 1년이 걸리는 까다로운 과정을 이수해야 신천지예수교인이 될 수 있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숫자다. 게다가 신천지예수교회는 기성교회의 극심한 견제 속에서 급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늘 화제를 낳고 있다.

한국교계에서 숱한 화제를 뿌리는 교회인 만큼 신천지예수교회를 이끄는 이 총회장의 행적을 기성교회와 기독언론은 늘 문제 삼아왔고, ‘목소리 큰놈이 이긴다’는 말처럼 기득권의 주장이 교계와 사회에는 그대로 통용됐다. 세간에 나도는 이 총회장의 행적과 법적다툼 결과에 관해 이 총회장이 직접 밝힌 내용과 법원 판결 등에 근거해 정리했다.

◆조부의 태몽 “며느리 배에 빛이 가득 비춰”

이만희 총회장은 왕가의 자손(효령대군 19代孫)으로 1931년생이다. 한국 근대사에 가장 파란만장한 시기를 거친 그의 삶은 탄생부터 조금 남달랐다. 새벽이면 늘 뒷산에 올라 하늘에 기도를 올리던 조부는 어느 날 특별한 꿈을 꾼다. 주변이 칠흑같이 깜깜해지더니 이내 며느리 배에 눈부신 빛이 강하게 비추는 태몽이었다. 조부는 ‘하늘의 빛으로 태어났다’ 하여 아이 이름을 ‘만희(萬熙)’라 지어뒀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어릴 적 조부를 따라 늘 산에 올라 기도했지만 교회에 간 적은 없었다. 갑자기 가세가 기울면서 어릴 적 삶은 늘 고단했다. 그럴 때마다 늘 그의 주변을 맴도는 별들이 위로가 됐다고 한다. 일제치하에서 벗어나 해방의 기쁨을 누린 것도 잠시 19살에 6.25전쟁이 발발하자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해 최전방 보병부대(7사단) 하사로 제대하기까지 그는 수많은 전우들의 참담한 죽음을 봤다. 당시의 참혹한 경험은 그가 세계평화운동을 결심하는 계기가 됐다.

군에서 제대한 어느 날, 들판에서 기도할 때 큰 별 하나가 왔다. 그 별은 3일간 저녁 기도 때마다 그 앞에 나타났다. 그 별을 따라 산에 올라 흰 빛으로 된 천인(天人)을 만났다. 산상에서 ‘창조주 하나님께 충효를 맹세’하는 혈서를 쓰고 내려왔다.

▲ 서울대공원이 들어서기 전 막계리 일대 전경. (제공: 신천지예수교회)

◆전도관 그리고 과천 장막성전과의 인연

이후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찾아간 곳이 당시 신앙인들이 몰려드는 부천에 위치한 박태선 전도관이었다. 그는 열심히 교회에서 봉사하는 중에도 무시로 성경을 읽고 또 읽으며 말씀의 뜻을 깨달으려 애썼다. 그러나 성경에 대한 궁금증만 커질 뿐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당시 신흥교회로 주목받던 과천 장막성전의 목자 유재열의 깊이가 남다른 강의를 들은 것이 계기가 돼 장막성전에 입교한다.

그는 “교회에 봉사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삼았다”고 할 만큼 그곳에서 충성 봉사했다. 그러던 중 뜻하지 않은 오해와 배신, 죽음의 위협을 겪고 1971년 다시 고향 청도로 낙향한다. 무일푼으로 고향에 돌아온 그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당시 막 붐이 일어난 새마을사업에 열심을 냈다.

1977년 가을, 친구를 만나기 위해 제주도에 다녀오던 중 청도 현리 다리 위에서 전에 봤던 천인을 다시 만난다. 동북 하늘에서 구름을 헤치고 강림해 오신 분을 보며 ‘이 분은 하나님이시다’라는 생각에 땅에 엎드러졌다. 천인의 지시를 따라 그가 나왔던 과천 장막성전으로 다시 가게 된다.

◆장막성전으로 다시… 신천지 증거장막성전 창립

이렇게 7년 만에 다시 천인을 만나 지시를 받고 장막성전으로 돌아간다. 장막성전의 문제점을 보고 잘못을 지적하던 이 총회장은 1980년 초 요한계시록이 성취되는 것과 계시록 10장에 기록된 열린 책을 받는 체험을 한다. 이후 생각하는 것이 옛적과 달라졌고 성경을 통달하게 됐으며, 사람의 생각이 아닌 신의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또한 자신이 계시록에 기록된 교회들을 위해 보냄 받은 대언의 사자임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그의 이런 주장으로 인해 기성교단으로부터 ‘이단’이라 비난 받고 있지만 “하늘이 보여주고 들려주신 것을 전해야 하는 사명을 받았기에 하는 것”이라면서 “사람을 보지 말고 말씀을 듣고 판단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이 총회장에 따르면 당시 장막성전은 요한계시록의 사건이 이뤄지는 현장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등지고 부패해가는 장막성전의 목자와 성도들을 목격하고 하늘의 지시를 받아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다 숱한 폭행과 폭언을 당하기도 했다.

장막성전이 장로교회로 간판을 바꾸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뒤 그곳을 떠난 이 총회장은 그를 따라 나선 사람들과 삼년여간 모임 장소도 없이 들과 산에서 예배를 드렸고 1984년 3월 14일을 창립일로 선포했다. 이것이 신천지예수교회의 시작이었다.

▲ 1980년대 초 장막성전의 비리를 보고 나온 이만희 대표와 교인들이 야외에서 예배를 드리는 모습. (제공: 신천지예수교회)

◆신천지와 관련한 법적다툼, 진실은 ‘이것’

이 총회장을 따라 장막성전에서 나온 몇 사람으로 시작된 신천지예수교회가 불과 30여년 만에 성도 20만명이 넘는 초대형 교회로 성장하면서 신천지예수교회는 기성교단의 극심한 견제를 받고 있다. 이 총회장을 상대로 한 고소도 끝없이 이어졌지만 결론은 모두 ‘무혐의’였다.

2007년 MBC PD수첩 보도 이후 신천지예수교회 대표 이만희 총회장에 대해 가출, 휴학, 폭행조장 및 배임‧횡령과 관련한 검찰조사가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신천지예수교회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사회적 관심이 컸던 만큼 수사는 매우 엄격하게 이뤄졌다. 그러나 수원지검은 2007년 12월 모두 ‘혐의없음’으로 결론내렸다. 이를 근거로 MBC PD수첩은 2009년에 정정‧반론보도를 내보냈다.

특히 수만명을 이끄는 대형교단 지도자가 대대적으로 이뤄진 배임‧횡령 조사에서 ‘무혐의’를 받았다는 사실은 신천지예수교회 재정‧회계가 매우 투명하다는 방증이 됐다. PD수첩 이후 가출조장 관련 조사에서 이미 무혐의로 확인됐음에도 2014년 이 총회장은 다시 ‘영리목적의 미성년자 유인죄’로 고소당했다. 그러나 법원은 신천지예수교회에 소속된 일부 청년들의 가출은 신천지예수교회 때문이 아니라 강제개종교육 때문임을 분명히 밝히고 역시 무혐의 판결했다. 이 총회장은 ‘성경을 무료로 가르친다’는 이유로도 고소당했다.

고소인들은 ‘신천지예수교회가 무료로 성경을 가르치는 것은 학원법 위반’이라면서 2007년, 2008년, 2015년에 고소했다. 그러나 신천지예수교회에서 운영하는 성경센터가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관계자들도 봉사차원에서 동참한다는 점이 검찰조사에서 확인돼 모두 무혐의로 결론났다.

또 일부 기독언론은 근대사에서 최악의 사이비 집단으로 불리는 백백교, 영생교와 신천지예수교회를 수시로 비교하며 이단·사이비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백백교나 영생교는 모두 검찰을 통해 범죄 사실이 입증된 이후 언론이 다루기 시작한 것과 달리 신천지예수교회는 범죄사실이 드러난 적이 없음에도 범죄 집단처럼 일부 언론이 보도하고 있어 악의적 왜곡보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 신천지대표와 관련된 고소 내용과 결과 -
① 2007년 MBC PD 수첩 후- 배임‧횡령, 가출‧폭행조장 진정건(수원지검 2007 혐의없음)
② 영리목적의 미성년자 유인죄(수원지검 2014 혐의없음(범죄인정안됨))
③ 선교센터 학원법 위반(수원지검 2007, 서울서부지검 2007, 서울서부지검 2008 각 혐의없음, 수원지검 2015 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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