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28일 며칠간의 일정으로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했다. 방문 목적은 미국 상·하의원과 군사·외교 분야 지도자들을 만나 북핵 해결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북핵 대응을 위한 전술핵 재배치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면 틀림없다. 홍 대표는 도착 후 미국 외교협회가 주최한 간담회에서 “친북 좌파 세력 때문에 한미동맹에 균열이 발생하는 것이 북한의 위협보다 더 두려운 위기의 본질이다”라고 원색적 발언을 했다. 또 “과거 주한 미군 철수를 외치고 사드배치 반대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현재 한국정부의 주류다”라고 이어갔다. 그 전날에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대한제국이 망해갈 때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 구한말 고종 황제 같다”고 비난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홍 대표의 위 발언에 대해 심각하게 되짚어 봐야 한다. 우선 홍 대표는 대한민국 국회 제1야당의 수뇌(首腦) 곧 대표자다. 이 말인즉 자신이 한 말이 미칠 영향력과 파급력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특히 국내가 아닌 외국 그것도 세계 정치의 심장부에서 내뱉는 말은 한 개인의 생각을 넘어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한다는 생각과 의식으로 신중하게 발언했어야 했다. 아무리 정적 관계에 있다 할지라도 적어도 외국에 나가서만큼은 비난이 아닌 품격 있는 비판이 돼야 한다. 근본적으로 국내 사정을 외국으로 끌고 가서는 안된다는 말이 맞을 것이며, 부득이 외국에 나갔다면 가급적 정부와 한목소리를 내줘야 한다. 본인은 애국과 구국의 마음으로 한 말이라 하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국론분열이라는 치부를 적나라하게 대외에 드러냈으며, 나아가 국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우선 홍 대표의 금번 미국 방문을 통한 일련의 행보에서 감지되는 것은 외교적 감각과 정치적 기본 소양과 지식의 부재에서 비롯된 객기(客氣)와 같은 한바탕 소동이 아니었던가 싶다. 미국은 물론 모든 나라의 외교관계는 정부 내지 여당과의 관계를 원칙으로 하기에 애당초 야당 지도자에게는 환담 이상의 그 어떠한 답도 줄 수 없기에 얻어 올 수도 없다는 점을 간과했던 것 같다. 외교관계를 자신의 철학과 감정과 기분으로 해결해 보겠다는 자세는 어찌 보면 돈키호테적 발상으로 주변을 불안하게 할 뿐 전혀 신뢰를 얻을 수 없으며 국익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 발언 내용 하나하나에 대해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그 밑바탕에는 사대주의적 의식이 깊게 깔려있으며, 그러한 사대적 의식은 무지와 무식에서 비롯됐음을 이참에 많은 국민들과 공유했으면 한다.

먼저 문재인 대통령을 구한말 대한제국이 망해갈 때 고종 황제와 같다고 한 발언이다. 차라리 그 비유대로 문 대통령이 고종 황제 같은 의식과 애국의 길을 걸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고종 황제는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은 나라의 운명 앞에서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한 진정한 황제며 영도자(領導者)였다. 서슬이 퍼런 일제 칼날 아래서도 1905년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체결한 을사5조약 곧 을사늑약(을사조약)과 일제 침략의 부당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제2회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헤이그에 이상설을 정사로 한 특사를 파견하는 등 국제적 관계를 시도했으며, 중국과 일본과 동일시하며 민족의 자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1897년 대한제국의 수립을 선포하면서 친히 황제즉위식을 통해 황제에 올라 ‘광무’라는 연호를 썼으며, 황제권과 자주권과 부국강병을 목표로 한 개혁을 추진했으니 곧 ‘광무개혁’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민간을 통해 독립협회를 조직하게 하고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개혁운동을 황제로서 직접 주도했으며, 주변 열강들의 이권 침탈에 결연히 맞서 왔다. 이 같은 고종황제의 자주적 의식은 일제로부터 독살을 당하는 이유가 됐고, 이는 3.1운동 발단의 계기가 된 것이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비운의 고종 황제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따져봐야 한다. 구한말 조선의 운명이 주변 열강들의 이권침탈의 각축장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뭐였을까. 한마디로 당리당략에 여념 없었던 당파싸움이었다. 이는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여야를 넘어 수많은 계파에 의해 갈기갈기 찢긴 오늘날 정당의 현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으니, 바로 구한말 계파의 이익에 눈이 멀어 나라가 망해가도 당파싸움에만 여념 없었던 바로 그 역사다. 조국의 역사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가진 지도자가 과연 지도자라 할 수 있을까.

뿐만 아니라 한반도를 일제 침략의 현장으로 만든 장본인이 또 있으니 바로 홍 대표가 구걸하는 미국이다. 1905년 체결된 ‘가쓰라 태프트 밀약’이 그 증거다. 미국은 필리핀, 일본은 한반도를 식민지로 하는 데 대해 상호 묵인한다는 거래를 한 것이다. 오늘날 한반도 비운의 시작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였다는 역사에 대해 무지한 지도자에 국민들은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물론 홍 대표의 원색적 발언의 저변에는 문재인 정부의 무능이 주된 원인이기도 하다. 한반도 상황에서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의 최대 관심은 안보(安保)다. 안보문제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과의 대화와 대치의 문제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분명한 안보관의 부재다. 바로 그 안보관의 부재가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국민들은 농단이라 하면 치를 떨고 있다. 과거 정권의 최순실 국정농단과 같은 측근정치는 이제 그만 끝나야 한다. 하지만 불안한 것은 문재인 정부 역시 홍 대표가 염려하듯 측근들에 의한 측근정치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는 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지도자가 측근이 아닌 제대로 된 영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은 국정전반에 대한 지식을 기초로 한 철학과 소신이며 나아가 야당까지라도 아우를 수 있는 통 큰 지도력이라 하겠다. 덧붙이고 싶은 것은 한 나라의 지도자가 인기와 지지도에 연연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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