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공연 장면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이혜림·지승연 기자] 미국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 1911~1983)는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로 생에 두 번째 퓰리처상을 받았다. 자신의 이익에 따라 거짓말을 하고, 위선·허위·거짓을 숨기기 위해 두꺼운 가면을 쓴 인물을 이야기하는 이 작품은 1955년 초연 당시 800회 이상 무대에 올랐다. 자신을 테네시 윌리엄스의 광팬이라고 자처한 문삼화 연출이 한국적인 색이 들어간 새로운 모습의 연극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를 선보였다.

연극은 ‘빅대디(이호재 분)’의 대농장을 둘러싼 가족 간의 암투를 그린다. 빅대디의 큰아들 ‘구퍼(오민석 분)’와 그의 아내 ‘메이(김지원 분)’는 농장을 물려받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구퍼는 아버지가 자신보다 동생 ‘브릭(이승주 분)’을 더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농장을 받지 못할까 봐 노심초사한다.

정작 농장에 관심 없는 브릭은 술에 빠져 산다. 그런 브릭의 아내 ‘마가렛(우정원 분)’은 그가 원망스럽다. 브릭이 제정신을 찾고, 둘 사이에 아이가 생겨야 빅대디의 농장을 물려받을 텐데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브릭은 자신의 소울메이트였던 동성친구 ‘스키퍼’의 자살 이후 술에 빠져 산다. 그는 스키퍼가 자신 때문에 자살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둘 사이를 오해한 마가렛과 세상의 시선이 스키퍼를 죽게 했다고 주장하며, 술에 빠져 현실로부터 도망친다.

▲ 연극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공연 장면 ⓒ천지일보(뉴스천지)

작품의 제목인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는 자신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 안절부절못하는 인간의 모습을 비유한 표현이다. 뜨거운 양철 지붕 위에서 내려오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계속 있지도 못하는 고양이의 신세가 이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마가렛을 보고 “너는 뜨거운 양철 지붕 위에 있는 고양이 같아”라며 멸시하는 브릭도 자기 마음 편해지자고 자신의 불행을 아내 탓으로 돌리고 현실에서 도피하는 이기심을 보인다.

작품의 인물 설정·갈등 구조 등은 현대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수십 년간 무대에 오르는 비결은 어느 시대에라도 있을 법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깊은 공감을 느끼게 하는 소재는 뻔한 이야기라는 인식을 줘 자칫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문삼화호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에는 색다른 연출이 더해져 케케묵은 연극이라는 인상을 지운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무대 연출이다. 브릭과 마가렛의 방 주위의 테라스·복도를 어슬렁거리는 등장인물들이 관객 눈에 훤히 보인다. 빅대디와 브릭이 대화를 나눌 때 구퍼·메이·마가렛은 혹시라도 자신에게 불리한 말이 나올까 불안해하며 엿듣는다. 또 ‘빅마마(이정미 분)’는 둘째 아들 내외의 방 문 앞에서 둘의 대화를 염탐한다.

이런 무대·동선 연출은 관객으로 하여금 “등장인물 모두가 불안에 떨고 있는 고양이와 같다”고 유추하게 만든다.

▲ 연극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공연 장면 ⓒ천지일보(뉴스천지)

대사도 특이하다. 자세히 들어보면 배우들은 여러 개의 짧은 문장을 끊임없이 이어서 말한다. 작품의 번역에 참여한 문 연출은 “외국 정서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 어색한 번역체로 인해 외국 작품들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 같다”며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로 번역했다”고 밝혔다.

광기 어린 모습을 표현하는 배우들의 연기는 자연스럽다. 마가렛 역의 우정원은 1부에서 흔들림 없는 연기를 선보인다. 흥분해 날뛰는 브릭을 피해가며 하고 싶은 말은 다 쏟아 내고야 마는 마가렛에 동화된 느낌이다.

이승주는 현실에 관심 없는 듯 무기력한 브릭을 잘 표현하지만 마가렛이 스키퍼에 대해 말할 때엔 극도의 흥분을 보여준다. 발에 깁스를 한 채로 무대를 뛰는 그가 실제로 다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연극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는 오는 11월 5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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