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필자는 가끔씩 판문점을 방문하게 된다. 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어도 판문점에 가는 일정은 놓치지 않는다. 지난주에도 판문점을 다녀왔다. 판문점은 이 세상 아무도 모르는 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곳이지만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11월 초 한국을 방문하는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판문점 방문 일정을 두고 말들이 많다. 역대 많은 대통령들이 판문점을 찾았지만 트럼프는 가지 않을 것이란 설에서부터 그럴 리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필자는 미국 군인이나 미국 지도자가 판문점에 자주 나타나는 일이 우리 민족의 통일분위기 조성에는 유익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돌이켜 보자. 2004년 판문점에 근무하던 미군은 전격 우리 한국군 군인들로 교체됐다.

왜 그랬을까? 그 작전적 의미를 알 길이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심리전적으로 미군이 판문점을 지키는 것이 북한의 ‘악선전’에 이용당한다는 점도 분명히 고려됐다는 것이다. 즉, 북한 당국은 미제는 침략자이며 분단의 원흉이라고 비방선전을 일삼는데 판문점에 나와 버티고 선 미군 헌병이 그 최고의 ‘학습교재’라는 것이다. 북한은 정전협정 체계마저 무시하고 1990년대 초반 군사정전위원회를 뛰쳐나가 ‘조선인민군 판문점위원회’란 싱거운 것을 만들었다. 북한 측의 중립국 감독국이었던 폴란드와 체코 무관은 모두 철수했고 뒤따라 중국 인민해방군 대표도 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중립국 감독위원회 멤버들이 귀국을 거부하자 북한 당국은 그들 대표부의 수도와 전기를 모두 잘라버리는 극단적 조치를 취했다.

미국 대통령이 판문점을 찾고 전방에 나타나는 일은 우리로선 보기 좋은 장관이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북한 군인들은 “또 침략자의 원흉이 왔다”고 난리를 치게 된다. 그 위용을 잠시 살펴보자. 미국이 보유한 에어포스 원은 특수 제작된 보잉 747-200B 두 대로, 미 공군이 운영하고 있다. 연료를 한 번 주입하면 지구의 3분의 1을 운항할 수 있다고 알려진 보잉 747 기종에 공중 급유장치가 추가됐다. 최첨단 보안·통신 시설도 구비돼 있다. 타국 정상들이 방한할 때 서울공항에서 이착륙하는 것과 달리 미국 대통령에겐 선택지가 하나 더 있다. 주한미군의 오산 공군기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2년과 2014년 방한 때 오산 기지를 이용했다.

이때 단거리 이동 수단인 마린 원도 수송기에 실려 함께 온다. 위장용까지 2대다. 프로펠러와 동체 일부를 분해해 들여온 뒤 다시 조립하는 식이다. 시콜스키사(社)가 제작한 것들로 큰 기종인 VH-3D 11기와 작은 기종인 VH-60N 8기 등을 운용 중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오산 기지를 통해 어떤 장비가 들어오는지는 우리도 잘 모른다”고 말했다. 마린 원의 운용 인력은 4명으로 미 해병대 제1해병 헬기비행대대(HMX-1) 소속 해병 800명 가운데 선발한다.

대통령 전용 차량인 ‘캐딜락 원’도 두 대 들어온다. 미국 국토안보부 산하 비밀경호국(United States Secret Service)의 요구에 따라 제너럴 모터스(GM)에서 특수 제작한 차량이다. 내부에는 위급 상황에 대비해 스프링클러와 산소 공급 장치가 내장돼 있다. 13㎝ 두께의 방탄유리로 만들어져 총격을 가해도 끄떡없고 펑크가 나도 달릴 수 있는 특수 타이어가 장착돼 있다. 육중하고 튼튼한 차체로 인해 ‘비스트(Beast·야수)’란 별명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새로운 ‘뉴 비스트’의 무게는 8t에 달한다고 한다. 20㎝가 넘는 두께의 문을 열고 닫는 것은 비밀경호국 요원이 할 수 있다. 캐딜락 원의 대당 가격은 150만 달러(약 17억원)로 추정된다. 방한 중 미 대통령이 캐딜락을 ‘외면’한 일도 있는데 2008년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였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과 공동 기자회견을 한 뒤 어깨동무를 하고 이 대통령의 차량에 동승했다. 부시 대통령이 “내가 좀 타도 되느냐”고 물으며 먼저 제안했다는 게 당시 청와대의 설명이었다. 미국 대통령의 숙소 역시 ‘각별’하다. 2005년 11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부산 시내 한 호텔을 통째로 빌려놓고 실제로는 8만 6000t급 항공모함 키티호크호에서 숙박할 수도 있다고 해 확인 소동이 벌어졌었다. 당시 주일미군 소속으로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스카항에 정박해 있던 키티호크호가 부산 앞바다로 이동하기까지는 24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여서 나온 추측이었다. 당시 주한미군사령부가 “키티호크호는 한반도 인근 해상으로 이동, 배치될 계획이 없다”고 공식 해명하기도 했다. 이번의 트럼프 방문은 여느 때와는 다르다고 해야 한다. 사실 지금 북한과 미국은 거의 ‘선전포고’ 상태가 아닌가. 부디 무탈한 미국 국가원수의 방한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또 미국의 경호 및 의전도 소박하게 진행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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