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산재 사망사고로 악명 높은 한국타이어에서 또 다시 사망사고가 났다. 23일 한국타이어 금산공장에서 고무원단을 적재하는 작업을 하던 30대 노동자가 컨베이어벨트와 롤 사이에 몸이 빨려들어 사망했다. 작업 중 끊어진 고무원단을 끄집어내려다가 무릎 위 부위가 흡착된 것이다.

한국타이어가 그룹의 자회사인 D사를 통해 출고 때 설치한 자동장치를 수동장치로 교체하지 않았나 하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는 26일 기자회견을 통해 사고가 난 해당설비의 자동안전장치(위험감지센서)를 조작한 의혹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금산공장 관련 생산설비의 수리 제작 업무전반을 담당하는 한국타이어 자회사 대화산기가 해당설비의 자동안전장치를 고의로 조작 및 제거하지는 않았는지”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조작에 관여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대화산기의 “기계수리 작업일지 등 관련자료 일체를 즉각 압수수색하여 철저히 수사”할 것을 요구했다. 한국타이어 공장의 기계는 대형이고 고속회전을 한다. 만약 수동장치로 교체됐다면 노동자의 목숨을 저당 잡힌 거나 마찬가지다. 수동장치마저 사람 손이 안 닿는 곳에 설치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노동부와 검경의 철저한 진상 파악이 필요한 대목이다. 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해야 마땅하다.  

이번에 금산공장에 대한 작업중지권을 발동한 것은 적절한 대응이다. 그러나 작업중지가 보여주기식 대응이어서는 곤란하다. 같은 설비를 쓰고 있는 대전공장과 중앙연구소에 대해서는 작업중지권을 발동하지 않는 것만 봐도 사태를 안이하게 보는 것 아닌가 싶다.  

한국타이어가 그동안 사고를 철저히 은폐했다는 의혹이 일었는데 결국 사실로 밝혀졌다. 고용노동부가 밝힌 바에 따르면 한국타이어 대전공장과 금산공장은 지난 2013년부터 2015년 사이에 산재사고를 각각 11회, 7회 누락시켰다. 고용노동부가 적발한 기업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은 수치다. 안전사고에 대한 진상을 은폐하는 기업은 강력히 처벌하는 법률이 있어야 한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솜방망이법률이다. 

지난 6월 고용노동부 산하 산업보건연구원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6년 1월까지 의료보험 가입자 중 질병으로 사망한 한국타이어 공장과 협력업체 노동자가 46명에 이르렀다. 그 가운데 산재로 인정받은 사망자는 4명뿐이었다. 2007년 이전의 사망 사고 빈도도 이에 못지않다는 고발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는 지난 23일 성명에서 “지난 1996년부터 2006년까지 93명의 노동자가 집단으로 사망했고 2006년부터 2007년까지 1년 반 사이 무려 15명의 노동자가 심장돌연사 등의 사인으로 집단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산재협의회에 따르면 93명 가운데 이번 사고와 같은 형태의 사고로 숨진 사람이 16명이나 된다. 이번 사고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통계다. 

한국타이어에서 사망사고가 이어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근본원인을 못 밝히고 어물쩍 넘어가게 만드는 구조적인 환경이 문제다. 우선 무른 법과 제도를 악용해 산재사고를 밥 먹듯 야기하는 기업을 추상같은 법의 이름으로 처벌할 수가 없다. 노동자 안전에 필요한 법과 제도를 만들지 않는 국회가 문제고 법제도 개혁에 나서지 않는 역대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이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무엇하는 국회고 무엇 하는 정부인가, 이런 정부 이런 국회 왜 필요한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8월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고용노동부에 확인한 결과는 충격적이다. 이 의원은 지난 5년간 공식 집계된 산재 횟수가 대전공장 164명, 금산공장 148명, 중앙연구소 18명으로 모두 330명에 이르렀다고 폭로했다. 산재신청률이 1%에 불과하다. 왜 산재 신청률이 이렇게 낮은 것일까? 은폐와 억압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 말해 주는 것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산재 330명에 산재 신청률 1%! 이걸 누가 정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나? 이건 한국타이어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안전 현실을 드러내 주는 증표다. 한국 노동자가 얼마나 안전에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다. 이러고도 대한민국이 선진적인 나라, 안전한 나라라고 읊어댈 셈인가? 

제도 개선책은 무엇일까. 우선 공장과 사업장에 대한 안전실태 조사를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노동부에 부여돼야 한다. 영국이나 호주처럼 사망사고나 중대재해가 나면 법인과 원청을 처벌할 수 있는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 현재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는 상태다.  

한국타이어를 이대로 두어서는 안된다. 국회는 한국타이어 산재사망 진상조사단을 구성해서 대응하라. 노동자가 수없이 그리고 쉼 없이 죽어 나가는데 대응책 하나 못 내어 놓는다면 더 이상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이 아니다. 정부 역시 특단의 대책을 내야 한다. 한국타이어 공장 곳곳을 전수조사하고 지난 시기 은폐 사실을 철저히 조사해서 진상을 밝혀내고 전임 대표이사와 현행 대표이사, 사장을 포함한 책임자를 구속 수사해야 한다. 지난 대선 때 문 대통령은 한국타이어 집단사망사건에 대해 진상 규명 의지를 피력했다는 점을 잊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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