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훤 행복플러스연구소 소장 

 

사실 우리가 살면서 갖게 되는 두려움도 생각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 가능성이 많다. 거꾸로 우리가 그토록 간절하게 원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생각을 잘 하면 다 해결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얼마 전에 법륜스님의 강의를 유튜브를 통해서 본 적이 있다. 어떤 50대 중년의 남자분이 자신의 고민은 지금껏 여자를 못 만나서 자꾸 초라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법륜스님의 답변이 명쾌하면서도 깊은 생각을 하게 했다. 법륜스님은 60 가까운 나이인데 주변에는 여자와의 관계 때문에 결국 파계하고 속세로 돌아간 스님들이 많은데 자신은 잘 버텨서 주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남자 분에게 머리를 깎으면 해결되겠다면서 선문답 같은 말씀을 하셨다. 같은 사건, 즉 여자를 만나지 않는 것이 누구에게는 자랑스러운 일이 되고 누구에게는 수치스러운 일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생각에 달렸다는 것이다.

토머스 모어(Thomas More)의 ‘유토피아’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가 이야기하는 유토피아에서는 파렴치한 행위를 한 범죄자들은 귀에 금고리를 달고, 손에 금가락지를 끼고, 목에 금제 사슬을 두르고, 심지어 금제 머리띠를 매고 있어야 했다. 그들에게는 금은이 경멸의 대상을 상징했던 것이다. 그렇다보니 그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이런 금속을 모두 내놓아야 한다 해도, 조금도 아깝거나 억울하지 않았다. 

어느 날 이웃나라에서 세 사람의 사절이 백명의 수행원을 거느리고 유토피아를 방문했다. 그들은 금실을 섞어 짠 천으로 지은 화려한 의복을 입고, 무거운 금 목걸이, 금 귀걸이, 금가락지, 모자에는 진주와 보석의 술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그들을 구경하려는 유토피아인들의 의복과 견주어 으스대며 걸어가는 꼴은 정말 볼만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구경나온 유토피아인들에게 그들의 화려한 겉치레는 수치의 표식으로 보였으므로 그들은 일행 중에서 가장 지위가 낮은 사람들을 상전이라 생각하고, 금 사슬을 달고 있는 사절들은 노예들이라고 생각해 아무런 경우도 표시하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아이는 그들의 모자에 달려있는 진주나 보석 장식을 달고 있는 것을 보고, “엄마, 저 촌뜨기 좀 보세요. 아직도 꼬마같이 진주나 보석을 달고 있어요”라고 말하자 그의 어머니는 정색을 하며 “조용히 해, 얘야, 저 사람은 아마 사절님의 어릿광대일 거야”라고 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때로는 삶의 기준이 되고, 희망이 될 수 있는 금·은도 생각에 따라서는 돌만도 못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두 예를 보면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다시 한 번 정리해 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그 가치를 뒤집어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힘이 바로 ‘생각창조’의 힘이 아닐까 한다. 그렇게 깊이 숙고해서도 진정한 가치를 느끼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평생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일(job)이 됐으면 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