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한국축구가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여론의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천신만고 끝에 본선진출을 이룬 뒤 이달 A매치 평가전 러시아와 모로코전에서 2-4, 1-3으로 완패해 큰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언론들은 ‘한국축구는 죽었다’ ‘위기의 한국축구’ ‘한국축구에 실패학은 있는가’ 등의 축구 분석 기사를 내보내며 1년이 채 남지 않은 월드컵에 대해 깊은 우려를 보였다.

급기야 한국축구의 관리를 책임지는 축구협회 정몽규 회장이 지난 19일에는 직접 사과하는 기자회견까지 자청하고 나섰다. 정 회장은 “해외원정 졸전의 책임은 나에게 있다. 이유를 막론하고 회장으로서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국민 여러분의 관심이 없다면 대표팀은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없다. 선수들의 자신감이 크게 떨어져 있다. 위축된 상태로는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없다”고 대표팀을 격려해줄 것을 당부했다.

한국축구의 부진한 경기력은 축구를 좋아하는 대부분 국민들에게 실망감과 허탈함을 안겨주었다. 아시아 국가에서는 월드컵 최다 연속(8회) 출전 기록으로 자부심을 갖고 있는 국민들에게 최근의 성적은 불명예스럽고 쓴맛만을 주었다. 축구를 통해서 일체감과 국가의식을 갖는 국민들로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축구는 지난 수십년간 국민들과 함께 웃고 울며 성장해왔다. 1954년 스위스월드컵에서 처음으로 아시아 대표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한국축구는 60~70년대 아시아지역에서 맹주로 군림했으며, 1986년 멕시코월드컵부터 2018년 러시아월드컵까지 연속 본선에 진출하는 빼어난 실력을 과시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서는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4강에 오르며 전 국민이 ‘붉은 악마’ 응원단으로 길거리 응원에 나서게 했으며, 2010년 남아공월드컵서는 원정 경기사상 첫 16강에 진출하기도 했다. 국민들은 한국축구가 승리를 할 때 모두 기쁨을 함께 했으며, 패배했을 때도 아픔을 같이 나누었다.

일제의 압박에서 해방된 후 분단과 전쟁, 독재와 정치적 혼란을 겪으면서 ‘잘 살아 보자’는 일념으로 산업화에 박차를 가해 경제적으로 세계가 주시하는 ‘한강의 기적’을 이룬 국민들은 국기인 축구를 보면서 일상의 고단함을 잠시 잊었다. 축구장에 직접 가거나 TV를 보면서 즐거워하며 묵은 피로를 떨어냈다. 국민들은 축구를 통해 서로에 대해 공감하고 공동체를 구축하는 능력을 키웠다. 개인주의가 팽배했지만 축구에서만은 여와 야, 진보와 보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등 이념과 계층의 차이 없이 하나가 됐다. 축구는 골을 넣는 스포츠 종목 이상의 사회, 정치, 경제적인 통합의 이미지로서 상징성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사람이라면 아마도 축구에 관해선 대부분 한마디를 할 정도로 전문성을 갖고 있다. 그만큼 축구가 일상생활 속에 자리 잡았다. 필자도 개인적으로 초등학교 때까지는 동네 축구선수였으며,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한때 축구선수의 길로 갈까 하다 포기하고 열렬한 축구팬이 됐다. 스포츠기자에 입문한 후 축구 기자로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과 1991년 포르투갈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를 직접 취재하기도 해 축구에 대해 깊은 애착을 갖고 있다.

‘축구는 인생이고, 인생은 축구’라고 말한다. 축구를 통해 삶의 활력과 열정을 배우고, 삶이 혼자 살아갈 수 없듯 축구도 서로 협동하고 도와가는 종목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그동안 많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경험한 한국축구가 현재의 최대 위기를 슬기롭게 잘 헤쳐 나가 좀 더 성숙해졌으면 싶다.

앞으로 남은 기간 부족한 경기력을 잘 다듬어 내년 러시아월드컵에서 ‘골~~’이라는 황홀한 외침이 울려 퍼지며 축구의 재미와 아름다움을 느끼며 국민들을 행복감에 빠질 수 있게 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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