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대한민국 국민은 거짓이 아닌 진실과 정의와 싸워야 한다. 더 이상 이 나라에서 일어나는 이분법적 논리로부터 발생하는 총체적인 추태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다.

지난 21일 SBS는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몸통은 응답하라 - 방송 장악과 언론인 사찰의 실체’라는 제목으로 과거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 블랙리스트와 방송장악 음모에 대해 낱낱이 파헤쳤다. 기관의 도움 없이는 자료 찾기에도 힘들어 보일 정도로 방송은 치밀하게 준비된 듯해 보였다. 시청자들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할지라도 이 방송을 통해 과거 두 정권의 권력남용과 불법과 부정과 비리에 대해 다시 한번 분노하며 치를 떨었을 것이다. 어쩌면 두 정권에 대한 확인사살의 성격이 짙었으며, 미루어 짐작해 보건대 아마 그것이 방송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이제 우리는 누구의 편이 아니라 좀 더 성숙한 입장에서 이 문제를 객관적이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들여다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면서 ‘나는 정의, 너는 불의’라는 극단적이며 이분법적인 단죄논리로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신(神)의 역사가 아닌 이상 어차피 청산은 불가능한 것이며, 교훈삼아 고치며 나아져 변화돼 갈 뿐이다.

옛 속담에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이 있다. 즉, 힘과 권력의 편에 서기를 좋게 여기는 대상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얘기도 된다. 이를 대변하는 단어가 바로 ‘어용(御用,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부나 권력기관에 영합하여 자주성 없이 행동함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시대마다 권력과 어용은 ‘필요충분조건’이 되어 끈끈한 상호작용을 해 왔다. 이러한 어용의 범주에는 민초가 아닌 소위 교수·언론·종교인 등 지식인들이 해당되며, 이들을 가르쳐 ‘어용지식인’이라 불러왔다. 이 같은 어용은 우리 역사와 함께해 왔으며, 오늘날 자연스럽게 변질된 문화로 우리 저변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부터 인식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요인으로 외세의 말발굽 아래서 끈질기게 투쟁하고 또 타협하며 면면이 이어온 민족이다. 그와 같은 역사를 가능케 했던 것 중에 하나가 불행하게도 이 어용이었다. 사대사관(事大史觀)과 식민사관(植民史觀)이라는 말처럼, 살아남기 위해선 대국에 눈치를 봐야 했고, 정복자에게 아부하고 타협할 수밖에 없었던 부끄러운 과거도 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힘과 권력을 가진 자의 하수인이 돼야 했고, 나아가 그들의 나팔수가 돼야 했다. 한편 생각해 볼 것은 이 같은 삶을 살았던 선조들을 무조건 비난하지만,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고 함부로 말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해할 수 있는 게 있고 이해할 수 없는 게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신사참배(神社參拜) 즉, 장로교 지도자들이 하나님 대신 일본천황에게 절을 하는 배교의 길을 걷기를 서슴지 않았으며, 그 결과는 남과 북이라는 비극의 분단국가를 가져왔다. 또 독립협회에 대응하기 위한 일제 어용단체인 황국협회의 만행 등은 실로 가증스럽고 치욕스러운 우리의 자화상이라 하겠다. 일제 잔재 곧 어용이라는 DNA는 관성 작용에 의해 쿠데타와 삼선개헌을 찬양하는 언론과 장로교로 이어졌고, 전두환 정권(5공화국)을 정당화시키는 기독교와 언론 나아가 지식인들로 이어져 왔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지식인들의 진면목임을 어찌 부인할 수 있겠는가. 누가 누구를 판단할 수 있을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제는 솔직해야 한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이명박 정권 시절, 최시중씨를 앞세운 방송과 언론 장악에 방송과 언론은 과연 굴복 당했는가 아니면 스스로 굴복 했는가에 대해 자문자답해봐야 한다. 또 장로대통령이라는 닉네임이 말하듯, 기독교라는 종교권력과 정치와 언론은 일체(一體)의 길을 걷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지 대답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로 넘어오면서도 그와 같은 정치 종교 언론의 관행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으며, 권좌에 앉은 대통령은 황제라도 된 듯 측근정치의 극치인 ‘최순실 국정농단’을 낳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 때 언론과 종교는 뭘 했는가. 이명박 정권에는 앞장섰고, 박근혜 정권에서는 무너져 가는 정권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면서 하나같이 차기 정권의 그늘 속으로 들어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권력의 시녀가 되기를 자처해 온 언론의 길은 훗날 역사로 남게 될 것이다.

이제 이 대목에서 냉철하게 진단해 볼 필요가 있다. 과거 정권의 방송과 언론 장악 나아가 민간인 사찰과 같은 권력남용은 순진할 정도로 일차원적이며 무식했다면, 문재인 정부는 지능적이고 교묘한 면이 있어 보이는 이유는 뭘까. 물론 거기에는 국민 여론이 톡톡히 한몫 하고 있다고 봐야 하며, 그 여론은 과거 정권의 실정을 부각시키므로 인해 얻어진 반대급부일 수도 있을 것이다. 왜 모든 방송과 언론은 백기를 들고 현 정부에 투항하는 모습으로 비쳐질까. 과연 이명박·박근혜 정권에만 불법과 부정과 비리가 있는 것일까.

금번 SBS가 제작한 ‘그것이 알고 싶다’ 편이 왠지 석연찮은 의혹을 갖게 하는 이유다. 지난 19대 대통령 선거 직전 SBS의 오보 즉, ‘세월호 인양 지연 의혹 보도’에 대한 사과방송이 불편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 같은 흐름의 방송과 언론의 향방은 이 시대 또 다른 어용의 모습으로 진화하지는 않을까 조심스러워지는 대목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이제 언론은 과감하게 어용의 늪에서 나와 새 시대의 새 언론으로 거듭나야만 할 것이다. 언론이 살아야 나라가 살기 때문이다.

언론은 국정의 팩트를 알리는 역할이지 국정을 홍보하는 기관이 아니라는 점도 기억해야 하며, 언론 본연의 임무는 정권(권력)의 ‘감시와 견제’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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