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 ‘헤드윅’에서 헤드윅으로 분한 배우 오만석 (제공: 쇼노트)

밴드 연주에 묻히는 가사 아쉬워
배우 호연, 모든 아쉬움 잠식시켜

[천지일보=이혜림·지승연 기자] 1994년, 연극인 존 카메론 미첼(John Cameron Mitchell)과 음악인 스티븐 트래스크(Stephen Trask)는 LA에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 옆 좌석에 앉게 된다. 이때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서로 관심사가 비슷함을 깨닫고, 후에 음악과 모놀로그가 합쳐진 무대극을 만든다. 우연한 만남이 만든 운명 같은 작품이 바로 뮤지컬 ‘헤드윅’이다.

‘헤드윅’은 독일 통일 전 동독에서 남자아이로 자랐다. 고향의 암울한 상황을 견디지 못한 그는 성전환 수술을 해 미국으로 도망 간다. 그러나 수술은 실패였고, 그에게는 남성 혹은 여성의 성기 그 무엇도 아닌 1인치의 살덩이만 남게 된다.

자신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헤드윅은 본인조차 혼란스럽다. 그는 밴드 활동을 하며 만난 남편 ‘이츠학’과 결혼생활을 이어가면서도 어딘가에 있을 자신의 진정한 반쪽 찾기를 기대한다.

뮤지컬 ‘헤드윅’의 미국 오리지널 공연은 맨해튼 다운타운·웨스트 빌리지 등 뉴욕 브로드웨이 외곽 지역의 소극장 거리에서 공연됐다. 그러다 2014년 브로드웨이 공연으로 탈바꿈했다. 이에 맞춰 국내 공연도 작년 시즌부터 대극장 무대에 올랐다.

▲ 뮤지컬 ‘헤드윅’에서 헤드윅으로 분한 배우 오만석 (제공: 쇼노트)

공연은 대극장이기에 가능한 무대연출을 선보인다. 수십대의 폐차를 공수해 꾸민 무대와 화려한 조명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무대가 커진 만큼 관객과 배우의 거리는 멀게 느껴진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작진은 라이브캠(Live Camera)과 스크린을 활용했다.

막이 오르고 핀 조명이 객석 맨 뒤를 비춘다. 조명 끝에는 지나치게 화려한 망토를 두른 헤드윅이 우아한 포즈를 잡고 있다. 헤드윅은 관객의 손을 잡고, 윙크와 키스를 보내며 무대 위에 오른다. 이 모든 장면은 라이브캠에 담겨 무대 위 스크린에 동시 방영된다. 그가 등장하는 곳과 멀리 떨어진 자리에 앉은 관객은 영상을 통해서나마 아쉬움을 달랜다.

또 폐차 보닛에 들어가 연기하는 배우의 얼굴이 라이브캠을 통해 스크린에 방영돼 관객이 더욱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스크린은 배우의 연기뿐 아니라 넘버의 내용을 전달하는 역할도 한다. 공연장 지붕을 뚫을 것 같은 락밴드의 연주는 관객의 심장을 뛰게 만드나, 배우의 노래를 잡아먹는다. 집중해서 들으려 해도 한계가 있어 전체적으로 아쉬웠다. 다만 뮤지컬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고 평가되는 넘버 ‘Origin of Love’를 부를 때 스크린에 상영된 가사와 관련된 애니메이션이 내용의 이해를 도왔다.

뮤지컬 ‘헤드윅’은 헤드윅 역을 맡은 배우에 따라 공연의 맛이 달라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무대에 오른 배우는 그날의 기분·컨디션에 따라 애드리브와 밴드 멤버·관객과의 호흡을 달리한다. 역할을 맡은 배우에게 어느 정도 표현의 자유를 준 것이 ‘조드윅(조승우)’ ‘윤드윅(윤도현)’ ‘뽀드윅(조정석)’ 등 수많은 버전의 헤드윅을 만들어낸 비결이다.

▲ 뮤지컬 ‘헤드윅’에서 헤드윅으로 분한 배우 오만석 (제공: 쇼노트)

이날 공연은 국내 초연 당시 ‘조드윅’ 조승우와 쌍벽을 이룬 ‘오드윅’ 오만석이 헤드윅으로 분해 열연했다. 2005년과 2012년 시즌에 이어 세 번째로 뮤지컬 ‘헤드윅’에 참여한 그는 원조의 여유로움을 마음껏 뽐냈다.

밴드사운드에 묻히는 가사는 아쉬웠지만, 그의 모놀로그는 선명하게 잘 들렸다. 오만석은 숨소리의 강약 조절을 통해 섬세한 감정을 표현했다. 온몸을 사용해 헤드윅의 고통을 절규하며 넘버를 부르는 그의 모습에서 원조의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헤드윅의 남편 ‘이츠학’으로 분한 배우 전혜선은 오만석에게 뒤지지 않는 성량과 실력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특히 휘트니 휴스턴의 ‘I Will Always Love You’를 부를 때는 그의 청아한 목소리에 소름이 끼쳤다.

쉬는 시간 없이 본 공연 130분, 커튼콜 30분 총 160분 동안 공연을 이끄는 배우들은 관객을 공연에 흠뻑 빠지게 했다. 배우들과 관객들이 하나 된 시간이었다. 공연은 오는 11월 5일까지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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