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 나주시 교동에 위치한 난파고택. ⓒ천지일보(뉴스천지)

문화·예술·전시 등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
“시민과 역사문화 가치, 함께 나누고파”

[천지일보 나주=이진욱 기자] 전라도 정명 D-1 천년을 맞아 최근 나주시 교동 한·일·양 절충식 가옥인 난파고택·난파정이 새단장을 마치고 세계 염색사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난파고택은 을미의병장이자 동학농민혁명을 막아낸 공훈으로 해남군수로 제수됐던 향리 수장 정석진의 손자, 정덕중이 그의 어머니를 위해 지은 집으로 알려졌다. 

지난 18일부터 오는 22일까지 한국천연염색재단과 연계해 의류 등 다양한 천연염색작품이 난파고택에서 선보이고 시민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천연염색과 함께 고택에 대한 역사·사회적 가치와 특징 등에 궁금해하는 시민이 많다.

이에 기자는 20일 난파고택의 새 주인인 남우진 대표(WINWIN 개발)를 만나 고택에 대한 소개와 함께 구매 배경과 건축학적 가치, 수리 과정, 앞으로의 활용 방안 등을 들어 봤다.

남우진 대표는 이날 기자에게 가장 먼저 사랑채로 안내해 정석진의 미술 작품으로 추정되는 그림 4점을 소개했다.

그는 “정석진(1851, 난파蘭坡)은 향리 출신 만석꾼으로 태어났는데 나주 정씨로서 9대조가 되며 아버지는 참봉 찬기(讚基)였고, 어머니는 해주최씨 사륜의 딸로 정석진의 장남인 정우찬은 의관을 지냈다”면서 이 작품은 향리 출신이었던 정석진이 평소 문장과 그림에도 조예가 깊었는데 유일하게 남아있는 귀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난파고택의 역사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1895년 일본의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에 항의해 봉기했다가 참수당한 나주 을미의병장인 난파(蘭破) 정석진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는 의병장 정석진의 죽음에 많은 인사가 그의 죽음을 원통히 여겨 시(時)와 문(文)으로 애도했다고 설명했다. 정석진의 억울한 죽음은 나중에 신원(伸寃)됐으며 저서로는 ‘난파집’이 있는데 아들 정우찬 등에 의해 ‘난파유고’란 책으로 엮어졌다는 사연도 덧붙였다.

남 대표는 무엇보다도 고택에 담긴 이런 역사에 깊이 매료됐다. 그뿐만 아니라 이 집의 지형과 위치에도 크게 감탄했다고 했다.

▲ 20일 남우진 대표가 남파고택에서 정석진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이러한 연유로 남 대표는 1975년 이후 금하장학회의 소유였던 이 집을 상당한 비용에도 불구하고 바로 구매를 결심했다. 특히 그는 이 집만의 독특한 특징인 한·일·양 절충식 건축양식에 주목했다. 

“2년 전 나주에 우연히 방문해 이 집을 보게 됐을 때, 무엇보다도 터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며 “집 뒤로는 금성산이 어머니처럼 품어주고 바로 옆에는 나주향교가 있으며 난파정(집 오른편의 언덕)에서 바라보면 나주천과 원도심이 한눈에 들어와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을 보면 공간구성은 사랑채와 안채 영역이 구분되는 한식 주택의 평면을 기반으로 했고 온돌, 창호 등도 한식이다"며 "집의 지붕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한 뼈대와 구조는 일본식이고 또 방갈로 풍의 양식도 혼용된 한·일·양 절충식 가옥이다”면서 집 내부를 따라 안내했다.

그는 “한·일·양 건축의 좋은 점을 취해 조합했지만 어색하지 않고 전체적으로는 일식 주택과 닮았지만 서로 조화되며 어울린다”며 “사람이 실제로 거주하면서 살기에도 좋은 구조로 과학적으로 설계돼 있다”고 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난파고택은 1939년 전라남도 유일한 건축대서사였던 박영만이 설계하고 대목 김영창이 시공했다. 그 후 정석진의 가족과 임대자가 거주했는데 1970년경 지붕을 보수하고 일식 청기와를 새마을 청색 시멘트 기와로 교체하긴 했지만 사실상 방치된 상태였다.

이에 남 대표는 올해 초부터 개보수 작업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문간채부터 시작해 본채 사랑채 그리고 난파정까지 전반적으로 개보수를 진행했다. 하지만 그는 최대한 1939년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고자 애썼다.

“보수작업을 하면서 무엇보다도 이런 나주의 역사와 가치를 지닌 이 집을 보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불필요한 화려한 보수작업보다는 문화재 복원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작업에 임했다”고 말했다.

▲ 난파고택에서 전시 중인 천연염색 작품. ⓒ천지일보(뉴스천지)

특히 “전라도 정명 천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한국천연염색재단의 천연염색 작품의 전시공간으로 마련하기 위해 비가 오는 중에도 밤낮 공사를 진행했는데 지난 17일까지 약속한 날짜를 맞출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며 “오히려 정해진 날짜에 맞추다 보니 빠른 시간 내에 공사를 마무리하게 된 것 같다”면서 뿌듯해했다.

본채와 사랑채와 굴뚝과 우물, 앞 마당에 활짝 핀 금목서(향기가 좋아 만리까지 간다고 하여 만리향이라고도 한다)와 뒤뜰 은목서에 관한 설명까지 마치고 그는 기자를 고택의 오른편 언덕에 위치한 난파정으로 안내했다.

그는 “난파정은 난파 정석진을 기리는 정자로 정석진의 아들 정우찬에 의해 지어졌는데 여기서 난파는 난초향이 가득한 가파른 언덕을 의미한다”며 “언덕도 다시 정비하고 있지만, 당시 정자는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다”고 설명했다.

남 대표는 개인적으로 난파정에 특히 정이 간다고 했다. “금성산 자락과 마을이 보이는 경치가 정말 평화로워 보이고 해가 금성산 뒤로 넘어가는 모습 역시 장관이다”며 “이런 공간을 소수의 몇몇만 공유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남 대표는 향우 난파고택과 난파정을 시민들에게 일부 게스트 하우스로 운영해 누구나 체험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 난파언덕에 위치한 난파정의 야간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또한, 문화·예술의 공간으로서 고택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야외 음악회 등을 통해 난파고택만이 가진 독특한 특징과 역사적 가치를 사회에 환원해 지역민, 관광객과 함께 누릴 구체적인 계획을 구상 중이었다.

그는 “1939년 나주 근대를 2017년에 다시 마중한다는 의미로 난파고택을 ‘39-17 마중’으로 새롭게 브랜드화 할 것”이라며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하면서 나주 곳곳에 있는 지역민들의 문화, 예술 이런 부분을 읍성이란 대표 공간에서 모아서 읍성의 도시재생과 함께 나주를 관광문화도시로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기자에게 ‘속수나주지’란 향토사학지에 있는 정석진의 시 일부를 소개했다.

“영균는 난초를 차고 향기로운 명성 독차지했네. 지초와 향기가 같음이 난형난제 같으며, 국화와 명성을 나란히 하니 어느 것이 무겁고 가벼운가. 고고한 절개와 곧은 자태가 범상한 꽃을 초월하니 나의 집에 편액하여 나의 정을 기탁 하네” 그가 건넨 시 글귀 너머로 멀리서 금목서의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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