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민주주의와 달리 ‘숙의’ 과정 포함
신고리5·6호기 공론화 과정서 도입·적용
참여 시민 “갈등 해소 방법으로 효율적”
“‘숙의’ 이뤄지긴 모자란 시간” 비판도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신고리5·6호기 건설 중단 여부를 놓고 3개월간 진행된 기나긴 공론화 과정이 20일 오전 ‘건설재개’라는 결론이 내려지면서 막을 내렸다.
그동안 찬반으로 갈려 팽팽하게 대립했지만 결론이 내려진 시점에서는 양측 모두 수긍하는 분위기를 보이면서 공론화 과정에 처음으로 도입된 ‘숙의민주주의’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숙의민주주의로 찬반이 나눠진 갈등 상황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는가하면 적어도 이번 공론화 과정에서는 숙의민주주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다는 비판적인 견해도 나왔다.
숙의민주주의는 ‘숙의(deliberation)’가 의사결정의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 형식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전통적인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이 적용돼 다수의 의견이 반영되는 것에 그친다. 하지만 숙의민주주의의 경우 ‘합의적(consensus)’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숙의 과정을 포함하고 있다.
단지 투표에서 나타나는 선호도의 총합이 아니라 투표하기에 앞서 실제적인 숙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보는 것이 바로 숙의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이번 신고리5·6호기 공론화 과정에서도 이러한 숙의 과정이 포함됐다.
앞서 신고리5·6호기공론화위원회(공론화위)는 1차 전화조사에서 2만 6명의 응답을 받아 표본에 맞춰 ‘시민참여단’ 500명을 선정했다. 이 중 478명이 지난달 16일 열린 오리엔테이션에서 2차 조사에 참가했고, 471명이 종합토론회에 참석해 3차와 4차 조사에 참여했다.
471명의 시민참여단은 제공된 자료집을 통해 원전에 대한 이해를 높여갔다. 이어 2박 3일의 일정으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신고리 중단을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이 각각의 주장을 설명하면 시민참여단은 양측 주장을 종합해 최대한 합의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고자 토의에 들어갔다.
종합토론회의 분임토의 과정에서는 총 48개조로 나눠진 시민참여단이 양측에 제시할 질문을 만들었고 다시 전문가에 의해 한 조당 10문항씩으로 추려졌다. 양측 전문가들은 질문을 전달받고 각 항목당 1~2분씩의 답변 시간을 채워가면서 모든 토론회 일정을 마무리했다.
시민참여단에 참여했던 조원영(39, 남)씨는 한겨레 기고를 통해 “이번 공론화 과정이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서 갈등을 해소하는 값진 경험과 자산이 되리라 믿는다”며 “국민투표 실시 비용이 1000억원 정도인데 이번 공론화 과정에 들어가는 비용은 46억원이니 비용만 놓고 보더라도 갈등 해소 방법으론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또 “이런 과정이 우리 사회의 갈등을 해소하고 우리 사회를 좀 더 건강하게 만드는 길이라는 믿음이 더 커졌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러한 의견과는 달리 시민참여단의 공론화 과정은 애초부터 ‘공론적’ 의사결정 방식이 무리수였다는 견해도 나왔다.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 문제는 우리나라 원전 기술 수준과 중장기 전력 수급 전망, 원전의 특성과 안전성, 다양한 전력 생산 방식의 장단점 등 수백 가지의 변수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데, 기초적인 사실여부를 확인하기에도 터무니없이 부족한 기간이었다는 것이다.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문화일보 시평에서 이같이 밝히면서 “사안의 중요성이나 복잡성 차원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 아파트 재건축 문제도 의사결정에 아무리 짧아도 4~5년이 소요된다”며 “총체적으로 안타까울 만큼 허술한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2박 3일의 빡빡한 일정을 마치고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 시민대표들의 상태가 어떠했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면서 “이들 중 다수가 여전히 혼란스러웠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숙의민주주의는 숙의 과정이 포함돼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정부가 이를 간과하고 서둘러 결론을 내리게 했다는 비판이다.
신고리 건설 중단 여부 공론화는 ‘숙의민주주의의 시험대였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숙의민주주의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관심사로 떠오른 숙의민주주의가 과연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정착돼 나갈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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