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세계기록유산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許浚)의 삶은 미스터리이다. 그가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모친이 누구인지, 스승은 유의태가 맞는지, 의과에 합격했는지, 어떻게 내의원에 들어갔는지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지금까지 대중들은 소설과 드라마에 의존해왔다. 드라마 작가 겸 소설가인 이은성이 지은 ‘소설 동의보감’과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1999년에 방영된 MBC TV드라마 ‘허준’과 2013년에 재방영된 ‘구암 허준’의 이야기를 사실로 믿었다.    

그래서 허준은 천첩의 아들로 태어나 유의태에게 공부를 배웠고, 의과에 합격해 내의원에 들어가서 선조의 어의가 됐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러나 창작에 의존하는 소설과 사실(fact)에 입각한 역사는 엄연히 다르다. 

먼저 허준이 언제 태어났는지부터 살펴보자. 지금까지 허준은 ‘양천허씨세보’에 의거 1546년생으로 알려져 왔으나 최근에 진주박물관에서 ‘계회도’가 발견돼 1539년생으로 판명 났다.   

허준의 생모도 마찬가지이다. 허준의 생모는 ‘양천허씨세보’에 의거 손씨로 알려져 왔다. 심지어 ‘소설 동의보감’에서 허준의 생모는 천첩이었다. 그런데 허준은 제법 권세 있는 양반가문의 서자였다. 부친 허론(許碖)은 용천부사로 무관을 지냈다. 모친 김씨도 허론의 첩이었지만, 지방무관인 영광김씨 김욱짐의 서녀였다. 

이 사실은 미암 유희춘(1513∼1577)이 쓴 ‘미암일기(보물 제260호)’서 밝혀졌다. 1547년 양재역 벽서사건으로 함경도 종성에서 18년간, 은진에서 2년간 유배 끝에 홍문관 교리로 복직한 미암은 1567년(선조 즉위년) 10월 1일부터 별세 이틀 전인 1577년 5월 13일까지 일기를 썼다.  

유희춘은 1571년 전라감사 시절에 김시흡을 군관으로 두었다. 김시흡은 광주에 살았고 종8품직인 훈련원 봉사를 역임했는데, 유희춘은 ‘미암일기’에 김시흡을 언급하면서 ‘김유성의 손(孫)이며 허준의 적삼촌(嫡三寸) 숙부’라고 각주를 달아놓았던 것이다.

또한 허준이 의과에 급제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또한 허구이다. 허준은 유희춘의 추천에 의해 내의원에 특채됐다. 유희춘은 1569년 (선조 2년) 윤 6월 3일자 ‘미암일기’에 “허준을 위해 이조판서(당시 이조판서는 홍담)에게 편지를 보냈다. 내의원으로 천거해준 것이다”라고 적었다.  

1569년 6월 23일에 유희춘의 부인이자 여류문인인 송덕봉이 입안이 통통 부어오르고 목구멍이 아파오는 설종(舌腫)이 생겼다. 그리하여 미암은 여의(女醫)를 불렀는데, 이 때 허준도 미암의 부름을 받고 와서 송덕봉의 설종 병을 논의하고 돌아갔다. 

또한 6월 29일자 ‘미암일기’에는 “내가 어제부터 얼굴의 좌측에 종기가 생겨 허준의 말을 듣고 지렁이의 즙을 발랐다”라고 유희춘의 병치레가 적혀 있다. 이렇듯 허준은 유희춘 집안의 주치의나 다름없었다. 

역사는 소설과 다르다. 소설은 사실 탐구보다는 독자에게 즐거움을 주려는 반면에, 역사는 객관적 사실을 파헤치는 작업이다. 

‘미암일기’는 1592년 임진왜란 이후 국가의 사료가 많이 소실되자 선조실록 편찬의 사료가 됐다. 마찬가지로 ‘미암일기’로 인해 허준의 초기 삶이 제대로 밝혀져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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