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당문종 이앙(李昻)은 번진의 발호, 환관의 권력전횡, 붕당의 치열한 다툼이라는 정치적 현실을 탁월한 아이디어로 극복했다. 제위에 오르자 치밀한 통치계획을 수립해 검소한 생활을 장려했으며, 기생충과 같은 관리들을 숙청했다. 궁녀들을 풀어주고, 내실의 정치개입을 차단했다. 이틀에 한 번은 군신을 모아 정무를 논의했다. 갑자기 정치가 일신하자 국내외에서 축하가 연이었다. 그러나 이덕유(李德裕)와 이종민(李宗閔)의 양대 당파가 서로 대립하며 이전투구를 거듭했다. 문종은 중후하고 충직한 한림학사 송신석(宋申錫)을 재상으로 임명했다. 최대의 병폐는 환관의 권력 전횡을 타파하려는 계획을 추진했다. 송신석은 청빈하고 신중해 당파를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통상적인 일을 마음대로 뜯어고치고, 실익을 중시하여 차선책을 모르는 작은 그릇에 불과했다. 금군을 장악한 환관 왕수징(王守澄)이 그와 충돌했다. 그에게는 정주(鄭注)라는 유능한 모사가 있었다.

송신석은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부족했다. 그는 이부시랑 왕번(王蹯)을 수도방위 책임자인 경조윤으로 임명하고, 문종의 밀지를 왕번에게 알려주었다. 권력을 농간하고 아부를 일삼는 인간이었던 왕번은 권력의 추가 기우는 쪽으로 움직였다. 왕번은 송신석의 밀모를 왕수징에게 밀고했다. 왕수징은 송신석이 문종의 동생 이주(李湊)를 황제로 옹립할 모의를 꾸몄다고 무고했다. 재상 우승유(牛僧孺)도 등을 돌렸다. 송신석은 좌천됐다가 사망했다. 문종은 쓰라린 마음을 안고 다시 정주와 이훈(李訓)을 선택했다. 정주는 의술로 장안의 권력가들과 교유를 하다가 왕수징의 부하가 됐다. 그는 낮에는 가만히 엎드려 있다가 밤이 되면 부지런히 움직였다. 처음에는 사기꾼과 같았지만, 몇 년이 지나자 권신들까지 그를 찾았다. 문종이 그를 눈여겨 본 것은 그러한 점 때문이었다. 이훈은 재상 이봉길(李逢吉)의 아들이었으나 죄를 지고 추방됐다가 정주와 교유를 하면서 왕수징의 추천을 받아 재상이 됐다. 이훈은 정주의 도움을 받았지만 자신의 능력도 상당했다. 역사는 그를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무엇인가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두 사람은 왕수징에게도 불만을 품고 있었다.

정주와 이훈은 이덕유와 우승유의 갈등을 이용하기로 했다. 두 사람이 다투다가 함께 쫓겨나자 정보와 병권을 장악했다. 또 환관들의 모순관계를 이용해 왕수징의 심복들을 외지로 내쫓아 죽게 만들었다. 또 환관 구사량(仇士良)을 승진시켜 신책군중위로 삼아 왕수징의 권력을 쪼갰다. 왕수징은 사약을 받고 죽었다. 권력은 양립하지 못한다. 새로운 권력자가 된 이훈과 정주의 다툼이 시작됐다. 지모로는 따를 자가 없다는 이훈이 정주를 봉상절도사로 삼아 환관을 제거한 다음 정주를 제거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역사는 두 사람을 눈앞에 이익이 있으면 구차함을 무릅쓰고 무슨 짓이든지 할 수가 있었으며 누구도 그 속내를 알 수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권력자가 되자 속셈을 감출 줄 모르고 밀모라고 꾸민 것이 종종 외부로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기밀이 유지되지 못하자 실패의 씨앗이 자랐다. 이훈이 먼저 움직였다. 그는 부하 한약(韓約)을 시켜 금오위(金吾衛)에 있는 석류나무에 감로가 내렸다고 보고했다. 문종이 보러 오면 암살할 계획이었으나 일행을 접대한 한약이 겁을 먹고 땀을 줄줄 흘리자 구사량이 눈치를 채고 말았다. 사태를 짐작한 구사량은 즉시 문종을 호위해 궁궐로 돌아갔다가 금군을 파견해 그들을 모두 도륙했다. 이훈과 정주를 비롯한 추종자 수천명이 살해돼 피가 땅을 적셨다. 이 사건이 감로지변이다. 실패한 문종은 면전에서 불손한 말을 내뱉는 환관들을 보고도 집안에서 부리는 종들에게 수모를 당한다는 탄식만 늘어놓으며 옷깃으로 눈물을 훔칠 수밖에 없었다. 계획이라고 모두 성공하지는 않는다. 적임자를 고르고, 기밀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건은 실패에 대비한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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