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원룡 대한정명연구회 회장

우리의 선조들은 자식을 얻었을 때, 자식에 대한 장래의 기대와 소망을 담아 이름을 지어 삼신상 위에 올려놓고 절하며 그 이름값대로 살기를 기원했다.

이렇게 태어난 아기에게 처음 지어주는 이름을 ‘名(이름 명)’이라 했다. 그런데 ‘名(명)’자는 ‘夕(저녁 석) + 口(입 구)’로 이루어져 있다. 날이 어두워서 사람이 보이지 않을 때, 입(口)으로 불러 그 존재를 확인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름을 부르고 대답하는 과정에서 그 존재의 실체가 드러난다. 때문에 이 이름을 매우 귀하게 여겼다.

그래서 관례(冠禮) 이후에는 군사부(君師父)에게만 그 이름을 부를 자격이 주어졌다. 이런 전통 때문에 반가(班家)에서는 관례(冠禮) 때 새로운 이름을 지어 주었는데, 이것을 ‘字(자)’라고 한다. ‘字(자)’자는 ‘宀(갓머리) + 子(아들 자)’로 이루어져 있다.

아들(子)이 갓(宀(면))을 쓸 때 붙인 이름이란 뜻이다. 관례 이후에는 군사부(君師父)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자(字)’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그를 부르는 것이 과거 우리의 이름에 대한 전통이었다.

명(名)이나 자(字) 이외에 누구나 부담 없이 부를 수 있는 이름이 ‘號(호)’이다. 호에는 스승이나 친구 등이 붙여주는 ‘우아한 호칭’이란 뜻의 ‘아호(雅號)’가 있고, ‘살고 있는 집의 호칭’으로 그 집 주인의 호칭을 대신한 ‘당호(堂號)’가 있다.

특별히 스스로 지은 호를 ‘자호(自號)’라고 하였다. 이처럼 명(名)과 자(字)와 호(號)와 관련된 경명사상(敬名思想)은 이 땅의 이름을 바로 세우고 그 이름값대로 살기를 소망한 우리 선조들이 즐겨 누렸던 고급문화였다.

그런데 나라의 이름(국명(國名))이 무너져 내린 일제의 강점기부터 경명사상의 고급문화의 전통은 급격히 쇠퇴하여 오늘날은 그 전통이 단절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문제는 우리가 이름에 대한 정체성을 상실하면서부터 이 땅에 예의와 도덕과 염치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쌓아 올린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란 이름의 금자탑도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이름이 무너져 내린 현실을 냉철하게 되짚어 보아야 한다. 과연 우리 조상들이 이룩한 찬란한 금자탑을 훼손시킨 요인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모든 분야에서 그 이름이 바로 섰는지 쓰러져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쓰러진 이름은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바로 선 이름도 혹시 때가 묻지는 않았는지 살펴야 한다. 때 묻은 이름은 닦아서 빛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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