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초빙교수

넘어지고 또 넘어졌다. 발뒤꿈치에 수도 없이 물집이 잡히고, 굳은살이 박혔다. 손바닥은 갈라지고 닳고 찢어졌다. 고난이도의 트리플 점프를 하면서 죽음의 공포도 느꼈다. 강도 높은 훈련은 고통과 인내, 그 자체였다.

세계 최고수가 되기 위해 성공한 사람들의 필요충분조건이라는 1만 시간 이상의 개인훈련을 쌓으며 그의 몸은 헤어지고 부서지고 망가졌다. 손과 발에 그 인고의 자국이 그대로 묻어났다.

최근 모 TV 방송에서 클로즈업된 피겨 여왕 김연아의 손과 발이 화제로 떠올랐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한국 스포츠 사상 첫 감동의 피겨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김연아는 상처투성이인 손과 발을 방송에서 공개해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처음에는 ‘아줌마 손’이라며 공개를 꺼리다가 드러낸 그의 손은 21세 꽃다운 나이의 손이 아니었다. 상처투성이에 껍질이 벗겨진 손가락과 스케이트 끈을 매느라 굵어진 오른손 검지는 보는 이를 찡하게 만들었다.

세계 정상을 밟았던 발도 정상인의 것이 아니었다. 거친 힘줄과 푸른 실핏줄이 선명하게 솟아 있었고 곳곳에 상처들이 드러나 있었다. 손과 발 전체적으로 피부는 거칠었고 많이 상해있어 그의 세계 정상 등극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보여주었다.

상처로 가득한 그의 손과 발은 15년간 차가운 얼음판을 지치며 고통스러운 훈련을 견뎌낸 결과물이었다. 피겨 스케이트라는 종목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스포츠로 일반인들에게 인식되지만 한편으론 그 이면에서는 자기의 몸을 손상시키는 것도 마다할 수 없는 잔인한 스포츠라는 것을 그의 손과 발은 웅변적으로 보여주었다.

보통 스포츠팬들은 스포츠의 화려한 면만을 보고 환호하고 경탄하며 경외심을 갖는다. 선수들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며 치열하게 훈련을 쌓고 있으나 팬들에게는 훌륭한 경기력이라는 외형적인 모습으로만 나타난다.

선수의 겉 이미지와 속살이 함께 드러나는 것은 아주 드물다. 정상에 올랐을 때 고된 훈련의 뒷얘기와 몸 상처 등이 알려지면 감동의 깊이가 더해질 수 있다. 김연아도 이러한 경우에 속한다.

필자가 예전 신문기자로 활동할 때 스포츠 사진을 잘 찍었던 사진기자 선배가 있었다. 이 선배는 대부분 사진기자들이 경기 사진을 찍는 것에 더해서 선수들의 뒷면을 추가로 취재하곤 했다.

특히 어린 체조 선수들의 손바닥과 발 등을 찍는 데 많은 신경을 기울였다. 아름답고 귀여운 체조 선수들이 훈련 속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사진을 통해 보여줘 가슴 뭉클한 감동을 전달했다.

예술적인 형상의 체조 선수들이지만 이처럼 잘 보이지 않는 측면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훌륭한 스포츠 경기사진과 함께 또 다르게 스포츠를 이해하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사실 피겨 스케이팅과 체조 등은 화려한 율동과 경이적인 기술이 나타나는 대표적인 여성스포츠 종목으로 자리 잡았지만 내용적으로는 부상,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걱정해야 하는 어떻게 보면 소름끼칠 만큼 잔인한 스포츠라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 훈련 중 심각한 부상을 당해 영영 불구의 몸이 되는 경우도 있다.

86년 서울아시안게임 직전 태릉선수촌 훈련 중 몸회전을 잘못해 목뼈가 부러지며 하반신 마비가 된 김소영이 대표적이다. 이번에 보여준 김연아의 손과 발뿐 아니라 스타플레이어들이 그동안 고통과 인내의 몸을 드러낸 경우가 많았다.

축구스타 박지성의 발,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 이상화의 발, 성녀 마더 테레사의 쭈글쭈글한 손과 깊게 파여진 주름진 얼굴 등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이겨내며 누구나가 부러워하고 존경하는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는지를 말해주었다.

보통 운동선수들은 강인한 정신력을 키우기 위해 고통과 인내를 넘어서며 많은 훈련을 쌓는다. 빛나고 숭고한 정신력도 그 자체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몸에 그 인고의 자국이 아로새겨지게 된다.

손과 발, 얼굴 등 신체 어느 곳에서든지 고통의 흔적이 세월의 나이테마냥 남아있는 것이다. 정상의 스타들이 영광의 순간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몸아! 고생해줘서 고맙다”라며 몸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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