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천지TV=오동주 인턴기자] 평온한 공원, 한쪽에서 들리는 공사 소리.

공원에 어린이집 공사가 한창인데요.

이곳 한남동 응봉근린공원은 주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10년간 13억원을 들여 마련한 공원입니다.

그런데 원래 광장이던 위치에 연면적 222평, 3층 규모의 국공립어린이집이 지어지고 있습니다.

광장이 어린이집 부지로 결정되면서 사업을 추진한 용산구청과 일부 주민 사이의 갈등이 시작됐습니다.

주민들이 반대에 나선 이유는 어린이집 부지가 공원의 정중앙이라서, 허리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점 때문입니다.

실제로 산책로 중앙이 잘리면서 주민들은 차도로 우회하는 등의 불편을 겪고 있습니다.

(SU)
“보시는 바와 같이 이곳은 원래 공원의 산책로입니다. 하지만 현재 어린이집 공사로 인해 통행로가 일시 폐쇄됐습니다. 이로 인해 시민들은 어쩔 수 없이 차도로 우회하여 공원을 이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더군다나 발바닥 모양의 광장은 인근 주민들에겐 만남과 소통의 공간이었습니다.

아이들의 놀이터는 물론, 결혼식을 진행할 정도로 주민들의 애정이 묻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주민들이 어린이집 설립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지를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는 건데요.

대체 부지 3곳을 정해 구청과 협의를 보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구청은 토지교환과 공원조성계획 변경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부지 이전 불가 답변을 내놨습니다.

(인터뷰 : 김봉수 | 용산구청 여성가족과 보육지원팀 주무관)
“(주민들이) 다른 부지 될 줄 알고 민원을 주셨어요. 우리가 다 설명을 드렸거든요. 토지소요관계라든지 도시계획이라든지 여러 가지 법적 접촉을 다 피하다 보니까 유일한 부지가 거기였고 만약에 옆에다 할 수 있으면 굳이 거기에 안 하죠.”

(인터뷰 : 김숙진 | 공원 인근 주민)
“입지가 마땅치 않으니까 그런데 이 공원 그나마 조그마한 공원인데 이것을 잠식하는 게 아주 아쉬워서 동네 사람들도 전부 반대를 했죠.”

 

주민들은 공원을 지키기 위해 연대를 구성하고 구청과 서울시, 청와대에 여러 차례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검토하겠다는 구청의 답변을 받고 기다리던 주민들.

허나 지난 5월 19일 공사 안내표시도 없이 공사가 시작되면서 반대 주민들 간의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반대 주민들은 구청이 직원 30여명을 동원하면서까지 밀어붙이기식 공사를 강행했다며 공권력 남용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인터뷰 : 공원 인근 주민)
“경찰도 많이 왔어요. 여자 경찰들도 많이 몇 명 서 가지고 이렇게도 서고 이렇게도 서고 두 줄로 섰더라고요. 엄청 괘씸스러워서 그러고 있는데 못 이기겠더라고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주민 대다수는 작년 11월 건축 푯말이 놓이고서야 현 부지에 어린이집이 들어선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됐습니다.

구청 측은 주민설명회와 공고 등의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취재결과 구청이 언급한 주민설명회는 어린이집 건립이 주된 사안이 아니었고, 잠깐 시간을 내서 설명한 게 전부였습니다.

(인터뷰 : 공원 인근 주민)
“(설명회에 참석하신 거죠?) 노인정에 참석했어요. 길게 안 하고 조금 했나 모르겠어요. 노인정 옆에다 짓는다고 그래요. 어린이집을 그런 줄 알고 왔는데…”

(인터뷰 : 김봉수 | 용산구청 여성가족과 보육지원팀 주무관)
“(주민들에게 충분히 설명하셨나요?)충분히 했고, 산마을 빌라 사시는 분들 보면 엄청 반대하신 분들인데 명절 전에 나갔다 왔는데 이쁘게 만들어달란 이런 분위기에요.”

더욱이 현재 부지가 아닌 경로당 옆 놀이터가 어린이집 부지로 소개됐고,
참석한 주민 대부분이 노인이었다는 점을 볼 때
충분히 주민들에게 설명했다는 구청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또한 2차례 공고와 고시를 통해 알렸다고 하지만,

시보와 구보(신문 같은 역할)를 주민들이 홈페이지에 수시로 들어가 보기엔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주민설명회와 공고는 지방자치단체가 주요 사업을 설명하고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 만든 제도라 할 수 있습니다.

형식적인 행정에 그쳐 주민들의 이해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못한 점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공사는 내년 2월 말 완공을 목표로 현재 30%가량 진행되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부지 이전을 요구하는 서명 운동까지 벌여 1900명의 서명을 받기도 했습니다.

(녹취 : 김태돈 | 응봉공원지키기주민연대 부위원장)
“1900명까지 어떻게 해서 사인을 받았는데… 이 동네 모든 사람들이 90% 이상 다 했다고 보면 돼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민들은 구청장 면담을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한 번도 만나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터뷰 : 하정목 | 공원 인근 주민)
“공원을 줄여가면서까지 어린이집을 꼭 그곳에 세워야 되는 이유가 뭔지 그것 때문에 주민들께서 용산구청 가서 구청장님 뵙고 그 말씀 드리려고(했는데) (구청장 절대 안 나와!) 수십 명 정도 여러 번 가서 항의도 하고 했는데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지역 주민을 위해 대신 살림살이를 꾸려 나가는 곳이 지자체인데요.

(녹취 : 김태돈 | 응봉공원지키기주민연대 부위원장)(지난 6월)
“행정조직이 어려우면 그것을 잘 풀어나가시는 게 구청의 역할이고 행정가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청이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고, 주민들로 의견을 묵살했다는 인식을 갖게 한 것은 잘잘못을 떠나 안타까운 점입니다.

어린이집보다 공원에서 뛰어노는 게 좋다는 어린이들은

공원의 작은 광장을 지키기 위해 그림을 그렸습니다.

(녹취 : 김태돈 | 응봉공원지키기주민연대 부위원장)
“여러분 공원과 어린이집은 같이 존재할 수 없는 건가요.”

어찌됐든 각박해진 세상에서 자그마한 소통과 추억의 공간을 잃어버린 주민들의 한숨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인터뷰 : 공원 인근 주민)
“공원을 사실은 없애면 안 되지. 절대로 지을 때 아니라고 해도 아 소용없어요.”

(영상취재/편집: 오동주 인턴기자, 취재: 황금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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