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대장 김창수’ 스틸. (제공: 씨네그루㈜키다리이엔티)

대쪽 같은 백범 김구의 청년 시절 다뤄 참신
심리적 변화 겪는 결정적인 계기 아쉬워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나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셋째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독립운동을 펼쳤던 김구. 현대인들에겐 대나무처럼 대쪽 같은 백범 김구의 모습이 친숙하다. 하지만 그도 처음부터 지도자의 모습을 갖췄던 것은 아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백범 김구의 청년 시절 이야기가 영화로 나왔다. 영화 ‘대장 김창수(감독 이원태)’는 1896년 황해도 치하포에서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일본인을 죽이고 인천 감옥소에 투옥된 청년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1896년 흰옷을 입은 청년이 거친 숨소리를 내며 한 일본인에게 주먹을 휘두른다. 엎치락뒤치락 하더니 끝내 일본인이 숨을 거둔다. 일본인을 죽인 청년은 ‘내가 이 자를 죽였다’며 자신의 신상을 벽보에 붙인다. 결국 청년은 살해 혐의로 체포된다. 이 청년의 이름은 김창수다.

▲ 영화 ‘대장 김창수’ 스틸. (제공: 씨네그루㈜키다리이엔티)

김창수는 비극적인 죽임을 당한 명성황후의 시해범을 맨손으로 때려죽이고 스스로 잡혀 들어간다. 국모의 원수를 갚아 나라의 치욕을 씻어내겠다고 했지만 그는 사형수 신분이 돼 인천 감옥에 갇히고 만다. 국모의 원수를 갚은 자신은 죄가 없다고 외치지만 조선의 법도는 김창수의 말을 들어 주지 않는다.

“나는 그날 짐승 한 마리를 죽였을 뿐이오!”

무너지는 조선의 기강에 김창수는 분노한다. 감옥에서의 생활도 평범하지 않다. 함께 갇힌 죄수들마저 이상적인 신념을 외치는 김창수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김창수도 그들을 색안경 끼고 보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못 배우고, 못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재판조차 받지 못한 채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조선인들을 본 김창수는 현실에 눈을 뜨게 되고, 감옥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백범 김구의 강렬한 투쟁의 순간이 아니라 그 시작점에 놓인 한 청년의 변화를 그린다. 실존 인물의 이야기인 만큼 제작진은 반전을 노리며 제작보고회와 기자간담회에서 김창수가 백범 김구라는 것을 알리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정작 배우와 감독의 입에서 해당 내용이 나왔으며, 일찍이 기사가 터져 나오는 바람에 제작진의 이벤트는 실패했다.

백범 김구의 청년 이야기라는 소재는 역사를 안다는 기자들조차 ‘아차’ 싶을 만큼 참신했다. 영화는 이 감독과 자녀의 대화에서 시작된다. 이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몇 년 전 아이와 함께 김창수와 관련된 역사적 장소를 갔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작아 눈물이 났다”며 “울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아이가 왜 우는지 몰라 의아해하더라. 기본적으로 역사적 인물에 대해 아는 것이 있어야 감정을 느낄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설명한 바 있다.

역사를 중요시하는 이원태 감독의 열정이 영화에 가득 담겼다. 천대받고 학대당한 죄수들은 김창수를 통해 하나 된다. 이 모습은 오늘날 힘없는 서민이 촛불로 하나 됐던 지난겨울을 떠오르게 한다.

신나는 배경음악과 급박하게 흐르는 전개는 지루할 뻔했던 내용을 이끌어준다. 어느 것 하나 올곧은 것 없는 감옥의 모습은 당시 혼란스러운 시대와 죄수들의 불안정한 심리가 반영된 부분이다.

그러나 김창수가 감옥에서 심리적 변화를 겪는 결정적인 계기의 개연성이 부족해 아쉽다. 무슨 생각으로 일본인을 죽였으며, 어떤 사상을 가졌는지 설명되지 않아 초반에 모두를 등지는 김창수가 이해되지 않는다.

▲ 영화 ‘대장 김창수’ 스틸. (제공: 씨네그루㈜키다리이엔티)

또 생애 첫 악역에 도전한 송승헌의 연기는 잘 흐르는 시냇물에 돌덩이를 던진 것처럼 숨이 턱턱 막힌다. 송승헌은 감옥을 지옥으로 만드는 소장 ‘강형식’ 역을 맡았다. 비주얼은 완벽했으나 악역이 부담스러웠던 것인지 그는 책을 읽는 듯한 억양과 부정확한 발음으로 흐름을 깬다. 상대역인 조진웅과 대립각을 세워야 할 정도로 영향력을 끼치는 배역이지만 그는 악하게 보이려는 인위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김창수 역이 부담스러워 주저했다는 조진웅은 이 모든 흐름을 깊은 연기 내공으로 휘어잡는다. 그의 연기에는 실존 인물을 연기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이겨내며 눈빛과 표정 하나하나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특히 조선의 자유를 외치며 울부짖는 모습은 마치 조진웅 본인이 독립운동가로서 세상에 외치듯 보였다.

아울러 인천 감옥의 간수 ‘이영달’ 역을 맡은 유승목이 눈에 띈다. 그는 죄수들에게 매질하고 폭언을 일삼는 간수로 분해 한 대 치고 싶을 정도의 비열함을 보여준다. 유승목은 후반부로 가면서 겪는 감정 변화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등 인상 깊은 연기력을 펼친다.

이외에도 정만식과 정진영, 신정근, 정규수 등 연기력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배우들이 감초 역할을 한다.

스크린을 통해 최초로 공개되는 백범 김구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담은 영화 ‘대장 김창수’는 오는 19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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