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헌법재판소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 거부 사태의 후유증이 크다. 여야가 날선 공방전을 이어가자 이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청와대가 헌재소장 권한대행 체제를 유지키로 결정했으나, 이번에는 피감기관인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이 사안에 대해 언급하고 나섰다. 국감 거부의 단초가 되고, 정치공방의 원인이 된 헌재소장 공석에 대해 현행 권한대행 체제는 임시방편일 뿐 대통령이 조속히 헌재소장을 임명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낸 것이다.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을 비롯한 재판관 8명은 국회 법사위의 헌재 국감 파동이 나자 16일 재판관 간담회를 개최하고서는 8인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공석인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을 조속히 임명해 헌재가 정상화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 같은 재판관 전원의 결정은 김이수 재판관 임기동안 소장 권한대행 체제를 인정하겠다는 청와대의 방침과는 정면 배치되지만 헌재에서는 권한대행 체제에 의한 헌재소장 장기 공백이 헌법기관으로서의 위상에 상당한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우려를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헌재는 헌법 규정에 의해 법률의 위헌여부와 국민이 제소한 헌법소원을 심판하는 등으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기관으로, 민주주의를 사수해야 할 최후의 보루(堡壘)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재판관들이 정쟁에 휘말려서는 안 될 것이고, 특정 정부의 입맛에 좌지우지되는 행동 또한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재판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헌법의 명시처럼 헌재는 국민의 전체 이익을 위해 정의를 행사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런 입장에서 재판관들의 조속한 헌재소장 임명 요구는 시의성과 정당성이 있는 것이다.

헌법기관인 헌재의 구성을 더 이상 늦출 수는 없다. 현 사태는 헌재의 독립성에도 문제가 있지만 재판관들의 업무 과중으로 이어지고 있다. 헌법재판소법 제38조에서 ‘심판사건을 접수한 날부터 180일 이내에 종국결정의 선고를 하여야 한다’로 규정하고 있지만 2016년 사건 1976건 중 180일을 넘긴 사건이 무려 478건(24.1%)이나 된다. 심판사건이 법정시한을 넘겨 선고되기가 일쑤니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헌재의 정상 구성은 비단 헌재만의 시급한 요구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권익을 보장받으려는 국민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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