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원한을 품고 흉노족에 귀순한 환관 출신 중행열은 사사건건 한나라의 사자들을 공박했다. 어느 날 중행열은 한나라의 사자와 논쟁을 했다. 서로 양국의 취약점을 물고 늘어졌다. 특히 한나라의 모순된 점을 준열히 꾸짖은 중행열은 사자들이 어떤 말을 해도 지지 않았다.

“한나라의 사자여, 수다는 떨지 마라. 너는 한나라가 흉노에게 보내는 비단, 면, 쌀, 누룩을 정량대로, 또 양질의 것을 가져 오기만 하면 된다. 만약 수량이 모자라거나 품질이 조잡할 경우에는 가을 수확기에 기마대를 몰아 너희들 농작물을 짓밟아 버릴 테니 그리 알라.”

그러는 일방 계속 선우를 부추기면서 한나라의 틈을 엿보게 했다.

무제가 즉위하자 한나라는 화친책을 내걸고 흉노를 정중하게 대접했다. 관소의 교역에도 힘쓰고 한나라의 물산을 충분히 흉노에게 주었다. 그러므로 흉노는 한나라와 친하지 않는 자가 없고 장성 부근을 바쁘게 왕래했다. 그러나 한나라는 은밀히 흉노 토벌의 음모로 마읍의 호족인 섭옹일을 흉노에게 들여보냈다. 섭옹일은 밀수를 하면서 흉노와 친교를 맺고 교묘히 선우를 찾아가서 마읍을 넘기겠다고 제안을 했다.

그 말을 믿은 선우는 마읍의 풍부한 산물을 손에 넣고자 10만기를 이끌고 무주로 쳐들어갔다. 그러자 한나라는 마읍 근처에 30여만의 대군을 잠복시켜 어사대부 한안국을 호군 장군으로 임명하고 4명의 장군에게 충분히 출전 준비를 갖추게 한 다음 선우를 기다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선우는 마읍을 향해 단숨에 쳐들어갔다. 그러나 마읍까지 백여리를 남겨 놓고 평원 일대에 가축이 떼를 지어 있었는데 그것을 지키는 양치기가 하나도 안 보였다. 수상히 여긴 선우는 방향을 틀어 근처의 성 보루를 습격했다. 때마침 보루에는 변두리 요새를 시찰 중인 안문의 위사가 선우의 부대를 알아보고 수비를 준비했다. 이 위사는 한나라 군사의 음모를 알고 있었다. 그는 선우에게 위협을 받자 한나라의 비밀을 발설해 버렸다.

위사의 밀고로 선우는 깜짝 놀라면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즉시 군사를 요새의 밖으로 물리면서 위사에게 말했다.

“하늘이 네 입을 통해 위기를 알려 준 것이다. 너에게 ‘천왕’이란 칭호를 내린다.”

한편 한나라군은 선우가 마읍에 들어서자 각 군이 일제히 습격을 할 작전이었으나 선우가 미리 물러가 버렸으므로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대에서 출동해 흉노의 치중대를 공격하기로 돼 있던 왕희 장군의 별동대도 선우가 전군을 이끌고 물러가기 시작했다는 보고를 받고 출전을 보류했다. 왕희 장군은 이 작전을 세웠으면서도 출전하지 않아 처형됐다.

이 사건으로 흉노는 한나라와의 우호 관계를 끊고 한나라 변경을 습격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한나라 변경에 침입해 약탈하는 행위는 늘어만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역만은 계속됐다. 흉노는 여전히 한나라의 물건을 탐냈으며 한나라 또한 교역을 통해 흉노를 달래려고 했다.

5년 뒤 가을 한나라는 위청, 공손하, 공손오, 이광 등 4명의 장군에게 각기 1만기의 군사를 주어 교역을 하고 있는 주변의 흉노를 공격하도록 했다. 그 결과 전과는 보잘것없었다. 장군 위청이 상군에서 출전해 농성에 이르러 적의 머리와 포로를 합쳐 7백을 얻은 정도였다. 공손하는 운중에서 출전해 아무런 전과도 없이 물러나고 대에서 출전한 공손오는 대패해 7천여명을 잃었으며 안문에서 출전한 이광도 흉노의 대군에 참패했다. 이광은 뒤에 도망쳐 돌아왔다고는 하나 흉노에게 생포된 것이었다. 그 결과 공손오와 이광은 옥에 갇혀 돈을 물고 평민의 신세로 떨어졌다. 같은 해 가을 흉노가 다시 한나라 변두리에 침입해 약탈을 일삼자 피해가 많은 어양에 장군 한안국 군대를 주둔시켜 대비했다.

그 뒤 흉노는 얼마 동안 조용했다. 그러나 다음해 가을에는 2만기를 거느리고 쳐들어와 요서의 태수를 죽이고 2천여명의 포로를 데려갔다. 또한 어양 태수가 거느린 천여명을 쳐부수고 한안국의 군대를 포위했다. 한안국은 그때 군사들이 1천기에 불과해 전멸의 위기에 놓여 있었는데 연나라에서 구원군이 도착해 흉노를 격퇴함으로써 위기를 간신히 면했다.

흉노가 다시 안문에 쳐들어오자 한나라는 장군 위청에게 3만기와 장군 이삭에게 대군을 주어 출전시켰다. 그들은 싸워서 수천의 적의 머리와 포로를 잡았다.

위청은 다음 해에도 운중에서 출전해 서쪽의 농서에서 오르도스에 진을 친 흉노의 누번 왕과 백양 왕을 공격해 머리와 포로 수천과 소와 양을 백여만 마리나 붙잡는 전과를 올렸다. 한나라는 오르도스를 빼앗고 그곳에 삭방군을 설치하고 진나라 때 몽염이 쌓았던 요새를 되찾고 황하를 따라 방비를 굳혔다. 그러나 흉노 땅에 깊이 들어가 있는 상곡군의 조양을 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가 한나라 원삭 2년(기원전 127)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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