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韓, 성평등지수 亞 1위’
영화·아동매체서 성차별 내용
초등 교과서에도 ‘성비 불균형’
“개성존중 패러다임으로 바꿔야”
[천지일보=김빛이나·임혜지 기자] “여자캐릭터가 거의 없죠. 주인공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여자 배우가 할 수 있는 캐릭터가 거의 없는 편이에요.”
배우 염정아는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한국 영화계에서 ‘여배우’로 살아가는 고충을 이렇게 토로했다. 최근 성평등을 외치는 사회의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대중매체 등에서 비춰지는 여성의 역할은 매우 한정적이며 차별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올해 8월에 개봉한 영화 ‘VIP’에 담겨진 여성 캐릭터는 네티즌의 공분을 샀다. 영화에 등장한 대부분의 여성이 살인마가 저지른 범죄의 피해자로 나오는데 그 과정에서 여성이 피해를 받는 모습이 다소 적나라하게 표현됐다.
영화를 본 네티즌은 “불필요한 자극적 묘사와 여성을 우롱하는 서사가 너무 많다” “피해 여성들을 농간하는 수준이다” “남자 캐릭터들은 죽는 장면이 나올 뿐인데 여성 캐릭터들은 고문당하며 고통스러워하는 과정이 나온다” 등 문제를 꼬집었다.
영화의 성평등 지수를 나타내는 ‘벡델테스트(Bechdeltest)’를 보면 한국영화에서 여성 캐릭터의 입지는 아직까지도 매우 좁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100만명 이상 관람한 영화 23편 중 오직 7편만이 이 테스트를 통과했다.
지난 3월 유엔개발계획(UNDP)이 발표한 ‘인간개발보고서 2016’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15년 성불평등지수’는 0.067점으로 독일(0.066점)에 이어 세계 10번째였으며, 아시아 1위였다.
그러나 성평등지수 아시아 1위라는 결과에 대해 많은 이들은 의문을 갖고 있다. 성인 콘텐츠뿐 아니라 아동을 대상으로한 프로그램과 초등교과서에서도 성차별적 내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올해 지상파, 케이블TV채널 8곳에서 방송된 어린이 프로그램 141편을 조사한 결과, 성차별적 내용이 42건이나 발견됐다.
이 중 ‘정글에서 살아남기-마루의 어드벤처’를 살펴보면 남성캐릭터 마루와 카이는 괴력을 발휘하는 손목 팔찌를 차고 용감한 모습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여성 캐릭터인 아라는 팔찌가 없고 악당에게 잡히는 존재로 그려졌다.
악당에게 잡힌 아라를 구해내는 영웅은 마루와 카이다. 이는 아동매체에서도 성별의 고정관념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초등 교과서도 문제가 됐다. 최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경미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입수한 초등학교 교과서 16권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남녀 성비 불균형 ▲성 역할 고정관념 ▲성별에 따른 학습활동 차이 ▲가족형태 등 문제점이 발견됐다.
문제가 된 교과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전반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많았다. 또 직업에 대해서도 성 고정관념이 보였다. 선생님, 승무원, 은행원 등의 직업은 여성으로 더 많이 그려졌으며, 기관사, 과학자, 기자 등은 모두 남성으로만 그려졌다.
여성은 머리가 길거나 장신구를 하고 분홍색과 치마 옷차림인 경우가 많은 반면 남성은 짧은 머리에 짙은 바지차림이었다. 성 역할에 있어서도 남녀 모두 집안일을 하는 모습이 담겨있긴 했으나 생계부양자는 남성으로만 그려졌다. 아이를 간호하거나 병원진료를 돕는 것도 여성으로 그려졌다. 보건실의 양호선생님은 모두 여성이었다.
이에 대해 변신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는 한국사회안에서 고착화된 여성의 역할이 아직까지 대중매체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변 교수는 “대중매체에서의 남자와 여성상은 정형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보다 다양한 여성상을 그려주는 문화콘텐츠 등이 늘어나고 남성과 여성의 적절한 지점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변 교수는 성역할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사람마다 각각의 개성을 갖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여자는 여자답게 남자는 남자답게’라는 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며 “개인의 개성에 맞춰서 존중하며 살아갈 수 있는 성역할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