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3일 서울 장충동 경동교회에서 ‘루터 종교개혁 500주년 및 원효대사 탄생 1400주년 기념 종교 평화 예술제’ 첫날 학술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시대 개혁한 두 사상에 주목
마틴 루터 종교개혁 500주년
원효대사 탄생 1400주년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2017년 올해는 그리스도교와 불교계 모두에게 매우 의미 있는 해다. 올해는 마틴 루터의 종교교혁 500주년이 되는 해임과 동시에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원효성사 탄생 1400주년이 되는 매우 뜻 깊은 해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시대와 종교를 달리하지만, 공히 당시 자신이 속한 종교의 개혁을 강력하게 외친 개혁가이자 위대한 사상가였다는 점에서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제2의 종교개혁이 더욱 요청되는 이 시대에 두 종교인의 종교개혁 사상을 새롭게 조명하는 일이 주목을 받는 이유다.

올해 한국 종교계는 그 어느 때보다 종교 간의 평화가 더욱 요구됐다.

특히 개신교인에 의해 훼손된 불당을 다시 재건하는데 도움을 줬다는 이유로 대학교수직에서 파면된 손원영 교수 사건은 한국 사회 내 종교 간의 갈등의 단면을 보여줬다.

이웃 종교 간 화합과 상생을 도모한다며 종교연합 행사에서 각 종단 리더들이 손을 잡고 함께 입을 모으고 있지만 내부에 깊숙이 자리한 종교 간 갈등은 여전하다는 점을 방증한 셈이다.

이 때문에 지난 13일 서울 장충동 경동교회에서 열린 ‘루터 종교개혁 500주년 및 원효대사 탄생 1400주년 기념 종교 평화 예술제’는 종교 평화를 원하는 이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특히 ‘사회가 걱정하는 종교’라는 꼬리표로 불교든 기독교든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큰 현실 가운데 두 개혁자들의 가르침이 주는 교훈은 상당했다.

가톨릭과 개신교를 나뉘게 하며 기독교계 한 획을 그은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1517년 10월 31일 이른 아침에 비텐베르크 성교회(Wittenberg Castle Church)의 문에 가톨릭의 부패상을 지적하는 95개조의 반박문(Ninety-five Theses)을 게시했다. 새로운 종교, 개신교 탄생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개신교 역시 500년이 지나며 종교개혁 정신을 구현해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617년 4월 28일 현재 경북 경산시 자인면(신라 때 押梁郡 南佛地村 栗谷)의 마을의 밤나무 아래에서 원효(元曉, 본명 薛思, 617~686)가 태어났다. 원효의 사상 중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화쟁(和諍)이다. 그의 저서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을 통해 본격적으로 자리잡은 이 개념은 본래 불교 각 교파들 사이 또는 충돌하는 주장들 사이의 소통과 화회(和會)를 모색하는 소통이론이자 담론윤리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종교개혁을 되짚어본 이날 세미나에서는 개신교 불교 학자들이 나와 루터의 종교개혁정신과 원효의 화쟁 사상을 종교·사회 여러 분야와 접목해 재해석했다.

◆루터가 개신교·천주교에 주는 교훈

현장아카데미 이정배 원장은 ‘종교개혁 3대 원리의 세 오직 교리에 대한 메타크리틱을 통한 이후신학 모색’을 주제로 발제했다. 그는 우리의 세계관과 종교의 관계의 상관성을 언급하며 “자연환경에 따라 인간이 자기를 이해하는 방식도 달라지고 종교이해도 변한다”고 설명했다. 풍토에 따라 종교의 특성이 달라졌다는 해석이다.

이 원장은 “새로운 기독교의 탄생을 기대한다”며 “이제 우리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히브리적 종교성이 아시아적 풍토에서 어찌 재구성될 것인지를 물어야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톨릭신학과 개신교적 기독교 ‘以後의 신학’을 물을 일”이라며 자기 발견적 해석학(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서구적 기독교로부터 희망을 말하는 일이 버겁다면 이제 아시아적 기독교로부터 평화와 공존을 구할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이화여대 기독사회윤리학 백소영 교수는 종교개혁의 만인제사장 정신을 핵심으로 ‘두 명의 카타리나: 만들어진 소명의 폭력’을 발제했다. 그는 “종교개혁을 한마디로 말하라고 한다면, 나는 ‘권위 나눔’이라고 표현하고 싶다”며 성평등을 요구했다. 그는 “왕과 귀족들, 사제들만 독점했던 성서 해석이나 신앙 고백의 권위를 평신도에게 부여한, 아니 돌려준 사건이었으니까”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백 교수는 “그 개혁 정신을 이어 받아 바통을 꼭 쥐고 달리는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새로운 신앙고백 안에는,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어 고정되고 닫힌 응시로 ‘너의 재능’을 제한하거나, 핵가족만을 정상가족으로 신성화하면서 결혼하지 않는 선택을 하였으나 의미 있고 헌신적인 공동체적 실험을 추구하는 ‘소명’을 가진 신앙인들을 억압하는 언어는 담길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이날 종교개혁 정신에 비춰 천주교계가 개혁해야 할 부분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우리신학연구소 황경훈 소장은 ‘교황청 개혁과 한국 천주교회의 개혁’을 주제로 한 발제에서 인천성모병원, 대구희망원, 성가정입양원, 대구파티마병원, 청주 사제 폭행사건, 충주 성심맹아원 사건 등 천주교가 운영하는 사업장에서 발생했던 문제들을 짚었다.

황 소장은 “어느 교구에서도 교구장이 피해자나 문제를 제기한 시민단체들과 대화에 나섰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며 “이런 이유로 끊임없이 대화나 소통을 요구해오고 있는 것은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따라서 교회 지도자들은 문제해결 의지가 없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천주교회의 개혁은 무엇보다도 리더십의 부재에서 찾아져야 하며 따라서 청렴하고 능력 있는 지도자를 선출하는 데서 ‘하느님의 백성’ 전체가 참여하는 민주적 제도의 확립이야말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오늘 천주교회 개혁의 핵심과제”라고 지적했다.

 

◆원효가 바랐던 화쟁 사상의 구현

한양대학교 이도흠 교수는 ‘포스트세속화/탈종교 시대에서 화쟁적 불교 개혁의 길’을 주제로 한국불교의 현실을 진단했다.

그는 “지금 한국불교만을 놓고 볼 때 절체절명의 위기임은 분명하지만, 성찰과 혁신, 그리고 연대가 있을 때 위기는 기회로 전환한다”며 “봉암사 결사와 1994년 종단 개혁의 초발심으로 돌아가서 승가 본연의 청정한 가풍을 일으켜 교단의 온갖 구조적 병폐, 제도적 모순을 척결하고 이 땅을 부처님의 올바른 가르침과 보살의 향기로 물결치게 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성찰하지 못한 과거는 우리의 미래’라는 마음으로 불교계의 적폐를 청산하고 ‘현재는 미래의 앞당긴 실천’이라는 의지로 우리가 살고 싶은 절과 맑고 향기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희망은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으로 쟁취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입전수수(入廛垂手), 요익중생(饒益衆生)의 길-원효의 계승과 불교 혁신의 길’을 주제로 발제한 인제대학교 이찬훈 교수도 원효가 남긴 화쟁 사상의 적용을 요구했다.

그는 “원효는 제도화되고 교조화 돼 민중으로부터 멀어져 있던 종교를 민중 속으로 되돌려 놓았던 루터처럼, 원효는 난해하고 현학적이며 다분히 사회의 상층부에 치우쳐 있던 불교를 민중 속으로 끌고 들어가 민중과 더불어 숨 쉬는 새로운 불교로 되살려놓았다”며 “오늘날 원효가 우리 불교계에 던져주는 가장 큰 의미는 그가 온몸을 던져 실천했던 불교의 대중화”라고 짚었다.

이 교수는 “십우도의 입전수수가 나타내듯이 깨달음의 최고 경지와 완성은 중생 속으로 들어가 중생과 함께 하면서(同事攝) 중생을 널리 이롭게 하고 구제하는 요익중생(饒益衆生)의 실천”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원효의 화쟁 원리를 적용해 통일을 이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화쟁의 윤리와 평화의 길’을 주제로 발제한 한국교원대학교 박병기 교수는 “우리는 통일 과정에서 종교의 역할을 포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화쟁의 과정을 전제로 한다면, 개신교와 가톨릭, 민족종교 모두 남북교류의 통로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될 필요가 있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종교를 중심으로 삼아 남북한 사이에 문화 전반의 교류가 가능해질 수 있게 되면, 다른 영역으로의 전이(轉移) 및 확산의 가능성 또한 높아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직된 정치적 대결 구도를 조금씩 무너뜨릴 수 있는 기반으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종교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관계망 정립과 확산, 그것의 남북관계로의 확산 노력은 테일러(C. Taylor, 2015)가 말하는 진정성의 윤리와도 만나면서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새로운 관계 정립을 위한 윤리적 토대를 마련해가는데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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