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 원인에서 발생한 결과이며, 원인이 없이는 아무것도 생기지 아니한다’는 인과법칙(因果法則)은 인간사회의 필연적 현상이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될 인과현상들이 도중에 돌발사건을 만나 방향이 틀어지기도 하는데 그에 개재되는 것이 바로 정치적 타협이라는 것이다. 당연한 귀결도 ‘정치적(政治的)’이라는 물살을 만나게 되면 다른 결과물이 나오는 바, 정국 상황이 불안한 여소야대의 정치판에서는 이 같은 돌발사건은 비일비재했다.

정치의 계절을 만난 여야는 ‘국정감사’라는 정치적 흥행물들을 마주하고 있다. 국감장에서 온갖 말들과 행태들이 뉴스를 타고 있는데, 화젯거리는 단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다. 법사위는 13일 헌법재판소에 대한 국감을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야3당이 “국회에서 헌재소장 인준이 부결된 김 재판관이 소장 권한대행직을 유지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국감 자체를 보이콧해 결국  파행을 맞았다. 이를 놓고 여야 공방전이 드세지는 가운데 14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장문의 글을 올리면서 끄트머리에서 ‘… 수모를 당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께 대통령으로서 정중하게 사과드립니다’는 글을 게시해 논란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어떻게 보면 김이수 헌재 권한대행은 정치적 협상의 피해자라 할 수 있다. 그에 대한 국회 인준안 처리 당시, 같은 인사청문 대상이었던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함께 엮여 야권의 반대 압박을 받았지만 그중에서 김 대행은 흠결이 가장 적다는 여론도 있었다. 한동안 야당의 정치적 협상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인준이 부결됐다. 정부·여당이 잘 대처했더라면 인과법칙대로 순조롭게 귀결됐을 수 있었건만 ‘정쟁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그렇긴 해도 김 대행은 국회가 헌재소장으로서 직위를 부결시킨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때문에 야당이 “김 재판관을 헌재소장 권한대행으로 인정할 수 없다”거나 “헌재소장 장기 공백은 국회의 임명동의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국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권한대행 체제보다 헌재소장 체제가 긴요하다. 현행처럼 헌재소장 없이 김이수 권한대행 상태로 운용하겠다는 청와대 측의 주장에 대해 많은 헌법학자들은 헌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원천적인 해결 방법은 정부가 하루빨리 적격한 헌재소장을 국회에 임명 동의 요청해 정상 처리하는 일이다. 실을 바늘귀에 꿰야지 바늘허리에 묶어 쓰는 것은 정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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