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추석연휴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청자 접시 하나가 한화 425억에 낙찰되는 뉴스가 화제가 됐다. 송나라 여요자기(汝窯瓷器)라는 이 청자는 푸른색이 돋보이는 매우 아름다운 그릇이다. 그런데 작은 접시 하나가 4백여억이라니…. 이 천문학적 도자기 값이 어떻게 매겨진 것일까.

중국 고완 자료에 송나라 자기는 중국 본토와 대만고궁박물관 등 유명한 박물관에 소장된 것이 10여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비싼 가격에 경매가 돼 왔었다.

‘여요자기’는 중국 역사에서 가장 문화가 융성했던 송나라 시대 만들어진 그릇이다. 허난성 임여현 여주(汝州)에 있었던 가마(窯)에서 제작된 것이라고 하여 ‘여요자기’로 부른다. 청파잡지(青波雜志)라는 책에는 ‘궁중의 어용품인 뛰어난 청자를 생산하고, 남송시대에 이미 구하기 힘든 물건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중국 역대 황제들은 여요자기를 갖는 것이 꿈이었으며 실례로 청나라 옹정, 건륭황제는 모방품 여요자기를 만들어 완상하기도 했다. 모방품은 그 이후 여러 대에 걸쳐 만들어졌으며 지금도 옛날 자기를 굽던 가마에서 전통 방식으로 그릇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 고려청자는 여요로부터 기술을 배운 것이다. 이미 신라 때에도 청자를 굽던 기술이 있었지만 송나라에서 비색의 청자기술이 도입된 이후 일대 전기가 마련됐다. 고려청자의 특색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이 바로 비색이다. 비밀스런 색이라 하여 비(秘)자를 쓰기도 했지만, 푸른 비취색을 닮았다고 하여 비색(翡色)자기로 불렸다.

그런데 특별한 것은 여요자기의 기술을 받아들였지만 고려는 더 많은 명품을 만들어냈다.  전남 고려청자의 산실이었던 강진가마에서 생산된 고급자기를 보면 그 예술성에 탄복한다. 푸른 비색의 청자에 아름다운 그림을 상감하여 더욱 정교한 모양을 만든 것이다. 이는 여요자기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기술이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학, 연못에 행복하게 떠 있는 한 쌍의 원앙, 상서로운 꽃인 연꽃과 보상화문, 각종 동물들, 그림의 세계는 매우 폭 넓게 나타난다. 그릇의 종류도 매병에서 항아리 정병, 주전자, 베개, 각종 사발, 화장도구, 향로, 악기, 문구류 등 다양하다. 이는 단조로운 기물에 국한됐던 여요자기를 훨씬 앞서는 것이다.

송나라 때 사신으로 고려에 왔던 서긍은 고려도경이라는 책을 황제에게 바치면서 고려청자의 기술에 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도기의 빛깔이 푸른 것을 고려인은 비색이라고 합니다. 근년에 만든 것은 솜씨가 좋고 빛깔도 더욱 좋아졌습니다. (하략)…’

고려인들이 왜 최고의 자기를 구운 장소를 전남 강진 땅 끝 마을로 정한 것일까. 이곳엔 청자를 구을 때 필요한 흙과 나무 등 원자재가 풍성했기 때문이다. 특히 남송이 자리 잡은 저장성(浙江省) 항주(杭州)와 바닷길로 가장 가까웠기 때문이다. 당시 고려는 남송과 가장 활발한 무역관계였으며 지금도 저장성 항주 일대 고분에서 많은 양의 고려청자가 출토되고 있다.

중국인들의 고려청자에 대한 관심은 남다르다. 강진을 통해 청자를 수입해 사용했던 일본인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고려인들이 만든 비색의 청자를 가장 아름다운 자기라고 생각했으며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고려청자 가치에 대해 세계 수장가들의 평가는 너무 낮다. 가격도 같은 시기 여요에 비해 10분지 1도 안 된다. 한국의 공립 박물관에서 수장을 위한 보상 가격을 보면 보물급 청자 매병의 가격이 10억을 넘지 못한다. 왜 이렇게 낮게 평가되고 있는 것일까.

이번 홍콩 소더비 여요접시 낙찰자는 중국 상해 부동산 재벌로 박물관을 두 개나 가지고 있는 재벌이다. 그는 몇 년 전 명나라 작은 잔인 계항배(鷄缸杯) 낙찰 때도 3백억 이상을 썼다. 이들의 애국주의가 중국 고완에 대한 가치를 천문학적으로 높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강진 청자박물관을 예산이 없다고 국립박물관으로 승격도 못하고 아직 군립(郡立)상태로 두고 있다. 강진 대구면 청자가마에서 출토된 엄청난 양의 출토품이 지금도 국립 중앙박물관 창고에 수장돼 있다. 보석을 보석으로 보지 못하는 지금 한국의 안목을 가지고서는 문화역량을 키울 수 없으며 한류를 확산시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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