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10년 이스라엘 헤브론의 서안 시티에서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시위를 벌이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이 아브라함의 성소로 알려진 '패트리아크 동굴'을 자국의 문화유산으로 등재한 데 대해 반발하며 시위를 벌였다. (출처: 뉴시스)

팔레스타인 문화유산 지정에
미·이스라엘 반발, 탈퇴 결정
국제협력 목표로 시작했지만
중동 등 외교 전쟁으로 ‘몸살’
각국 탈퇴·가입 번복도 지적

[천지일보=이솜 기자] ‘유네스코는 교육, 과학 문화 등 지적 활동분야에서 국제협력을 촉진함으로써 세계평화와 인류 발전을 증진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유엔전문기구입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 홈페이지에 기입된 ‘유네스코 창설 배경’ 내용 중 일부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유네스코는 ‘세계평화와 인류 발전 증진’이라는 목표와는 달리 각국의 상반된 역사 해석과 정치적 입장에 따라 물밑 싸움이 치열한 외교적 ‘전쟁터’로 변질된 모양새다.

갈등의 핵심은 유네스코의 ‘세계유산등재’다. 총 1073개로 지정된 세계유산 중 특히 문화유산을 지정할 때 논란 소지가 크다. 경험한 역사와 정치적 입장, 또한 이를 통해 얻는 정치·외교적 영향과 이익의 셈법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이번 미국과 이스라엘의 탈퇴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이유 중 하나도 유네스코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영토 분쟁을 하고 있는 헤브론 구시가지를 이스라엘이 아닌 팔레스타인 문화유산으로 등록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혈맹국으로, 이스라엘의 항의를 지지하기 위한 조치를 내린 셈이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미국과 이스라엘은 12일(현지시간) 유네스코를 탈퇴한다고 밝혔다. (출처: 뉴시스)

요르단 강 서안에 위치한 헤브론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모두 선조로 여기는 아브라함과 그 자손의 무덤이 있는 지역이다. 이스라엘이 1967년 전쟁으로 점령한 곳으로, 국제법상 이스라엘이 무단 점거해 국제사회도 팔레스타인의 영토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10만명이 넘는 팔레이스타인들이 살고 있으나 이스라엘은 이곳에 정착촌을 건설, 500명가량이 살며 소유를 주장하고 있어 민족적 갈등이 심한 곳이다.

이에 유네스코가 헤브론을 팔레스타인의 영토로 지정했을 때 이스라엘의 불만은 폭발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대통령은 유네스코의 결정 직후 “누가 거기 묻혀 있나? 아브라함, 이삭, 야곱, 사라, 리브가, 레아다. 우리 선조 족장들과 아내다”며 격분하기도 했다.

또 이스라엘의 반발에도 유네스코는 동예루살렘에 있는 이슬람과 유대교 공동성지 관리 문제에서 팔레스타인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반대로 2010년에는 유네스코가 아브라함의 성소로 알려진 ‘패트리아크 동굴’을 이스라엘의 문화유산으로 등재하자 이에 팔레스타인 측에서 반발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유네스코는 중동뿐 아니라 조선인 강제노역을 시킨 일본 산업시설 ‘군함도’를 문화유산으로 지정해 양국간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또 한국과 중국 등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의 피해를 본 8개국이 연대해 위안부 기록물의 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으나 이를 막으려는 일본의 외교전도 치열하다. 이를 위해 일본은 유네스코 분담금 감축 카드를 꺼내 들었다.

▲ (출처: 유네스코 홈페이지)

시대적 상황과 집권 세력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각국이 유네스코의 탈퇴와 재가입을 반복하는 상황도 지적 받고 있다.

미국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때인 1984년 소련 쪽으로 기운 이념 성향과 부패를 이유로 유네스코를 탈퇴했다가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인 2002년에야 다시 가입했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에는 유네스코가 팔레스타인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이자 유네스코 분담금 연 8000만 달러(약 907억원) 이상을 삭감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1956년 자국의 흑백인종 분리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에 유네스코가 간섭한다며 탈퇴했다가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이 된 이후 1994년에 재가입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