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쓰기 민망한 표현이지만 10여일 이례적으로 긴긴 휴일을 실컷 즐긴 추석은 사람마다의 형편이 다를 것임에도 그것과 상관없는 질펀한 놀자 판이었다. 근로자들에게 추석 보너스(bonus)를 두둑히 쥐어줄 수 있는 기업인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는 필시 경영 능력이 탁월하고 상생(相生)의 인본적(人本的) 이치를 몸소 실천하는 사람인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고 기업 경영이 자선사업은 아니다. 한달이라야 겨우 30여일, 그나마 근로일수는 토요일 일요일 국경일 등을 빼고 나면 그것에 훨씬 못 미친다. 기업인 입장에서 이렇게 근로일수가 푹푹 주는 것이 즐거울 까닭이 없다. 그런데 기업인들이 즐겁지 않은 상황이어서 근로자들이 그만큼 더 즐거운 제로섬(zero-sum)은 아니지만 근로자들에게는 언제 또 찾아올지 모를 정말 즐거울 수밖에 없는 황홀한 행운이 찾아왔다. 그것이 바로 장장 10여일의 추석 대박 휴가다. 기업인 중에는 진정제라도 먹지 않으면 울화가 진정되지 않을 정도로, 가진 사람들(haves)로 치부되는 입장에서 ‘역(逆)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었다. 한달 30일 중 3분의 1일이 휴가라니, 진짜 어쩌다 한 번 있는 일이어서 다행이지, 월급이 덜 나가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회사 망할 일 아닌가.

사실이 그렇더라도 사람은 잘 놀아야 일을 잘 할 수 있고 생산성과 능률을 팍팍 올릴 수 있다. 자기 회사의 근로자들이 대박 휴일과 두둑한 보너스 덕에 모처럼 얼굴과 가슴, 기(氣)를 쫙 펴고 멀리 떨어진 부모 자식 가족을 만나 회포를 푸는 단란한 모습을 떠올린다면 ‘역 박탈감’에 잠시 울화가 치밀었던 기업인도 다시 얼굴이 환해지지 않을 수 없으리라 믿는다. 어김없이 기업에도 예외가 아닌 것은 사람이 보배이며 재산이라는 엄연한 사실이다. 창조와 혁신, 첨단 기술 개발은 물론이려니와 세계 시장을 누비며 회사를 먹여 살리고 나라를 빛내는 창발성과 에너지를 생산해내는 제너레이터(generator)인 진취적인 주역이 바로 기업이 확보하고 있는 인재다. 안보 전사만큼이나 국가와 국민 행복에 중요한 존재인 경제 전사(戰士)들이다. 기업인과 근로자들의 관계가 낭만적이지만은 않은 것이 우리의 불편한 현실이지만 근로자들에게 이번 추석 대박 휴가 때처럼 잘 해주는 회사에 근로자들은 더욱 열심히 헌신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근로자들의 대박 휴가는 기업인들에게 결코 손실이 아니라 미래의 ‘대박’을 위한 멋진 투자가 될 것 같다. 어떻든 대박 휴가로 기업인이 좀 우울했든, 근로자들이 좀 더 즐거웠든 간에, 기실 기업과 기업인, 근로자들, 우리 국가와 국민의 경제 사회적 역량이 감당할 만한 능력이 됐기에 근로자들에게 황홀한 뜻밖의 특별한 이벤트의 선물이 가능했다. 그렇다면 이 단계에까지 발전한 우리 경제 역량과 그런 경제 발전을 견인해낸 민관(民官), 기업인, 근로자 모두의 노력은 숱한 곡절과 풍파 속에서도 ‘So far so good/여기까지는 좋다’라고 말할 만한 결실을 맺은 것으로 일단 단락을 짓는 것이 가능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기회에 근로자의 노고를 높이 평가함과 동시에 기업인에 대한 평가도 특단의 ‘각성적(覺醒的)’인 차원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래야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거니와 늪에 빠진 우리 경제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구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곰곰 생각해보자. 국가 재정을 충당하는 세금의 대부분은 누가 부담하는 것인가. 더 말할 것 없이 기업인이며 그 기업인이 경영하는 법인이다. 이렇게 기업의 경영과실(果實)을 기업이 국가에 바치며 국가가 이를 징수(徵收)해간다는 의미에서 보면 기업과 국가는 동등한 동업관계다. 사회 권력관계가 말해주는 갑과 을의 관계도 아니며 권력 관계에서처럼 치자(ruler)와 피치자(the ruled)도 아니다. 

이래서 기업은 임자(owner)가 있다 하더라도 개인의 것이 아니며 기업인의 것이자 근로자의 것이요 국민의 것이며 국가의 재산이다. 따라서 국가는 기업에 고마워해야 한다. 국가경영의 성과를 좌우하는 큰 변수의 하나는 취업 문제다. 그 취업 문제의 해결사가 과연 누군가. 그것 역시 기업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도 국가는 기업에 고마워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현실은 그 반대 아닌가. 무엇보다 기업인에 굴욕감을 심어주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권력의 갑(甲)질이 그 대표적인 것이며 기업인과 기업의 손발을 꽁꽁 동여매는 관료만능의 행정규제와 재량이 또한 그것 아닌가. 이것이야말로 어느 정권에서도 고쳐지지 않았으며 심지어 지금 정권에서도 고질로 남아있는 적폐 중의 적폐다. 정말 각성적인 차원으로 고쳐지지 않으면 우리 경제와 나라의 경제에 대해 희망을 노래하기 어렵다. 그뿐인가. 유전무죄(有錢無罪)는 있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세계적 명망을 가진 한국의 대표 기업인들을 벌주고 잡아들일 때 경제사회적 파장과 국익을 철저하고 신중히 헤아려 처리하기보다 징벌(懲罰)적 분노를 앞세우는 것이 여전히 눈에 뚜렷이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의 문제다. 기업인을 이렇게 대접하면 사내 노사의 세력균형과 평화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가며 기업인에 대한 사회 전체의 분위기도 매도 일변도로 치달리게 된다는 것을 이 나라 지도자들이 모르진 않을 것 아닌가.    

긴 휴가였지만 추석명절은 일견 광태(狂態) 속에 허망하게 지나갔다. 지상과 해상의 교통로만 붐볐던 것이 아니다. 비행기가 휴가객 200만명 이상을 실어 나른 하늘의 길도 긴 휴가의 여파였는지 이례적으로 붐볐다. 하늘의 길은 지상과 해상의 길에 비해 추석의 전통 정신에 충실한 사람은 적고 국내외 관광지를 찾는 순수 관광객 유람객이 많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옛날 시라큐스(Syracuse)라는 나라에 왕의 권력과 영화를 부러워하는 신하 다모클레스가 있었다. 임금 디오니시우스 1세(Dionysius 1)가 이를 딱하게 여겨 그의 머리위에 날이 시퍼런 칼을 머리카락 하나에 매달아 놓고 바라보게 했다. 그것이 고사에 나오는 ‘다모클레스의 칼(Damocles’ sword)’이다. 그 칼을 본 그는 사시나무 떨 듯 떨었다. 임금이 말하기를 ‘보라! 이것이 무서운 권력의 실체이니라.’ 북핵은 사실 김정은이 도리어 그 핵 때문에 위태로워질 수도 있는 ‘다모클레스의 칼’과 같은 것이지만 우리에게도 그러하다. 이런 위기 상황에 하늘 길이 막힐 만큼 외유 관광객이 많았고 광화문 관장은 질펀한 잔치판이 벌어지지 않은 날이 없었다. 광태로 보일만 했다. 하지만 멍석이 펴져있었기에 신나게 논 것뿐이었지 광태는 무슨 광태였냐고 하는 항변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다만 우리가 정작은 절대로 잠시라도 광태에 빠졌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려면 긴 추석놀이에 흐트러진 맘과 매무새를 빨리 수습하고 서둘러 정상적인 일상에 복귀해야 한다. 이러면 이례적으로 긴 추석 휴가는 아주 값진 기억으로 남기가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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