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쇼핑몰이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상업적 목적으로 쇼핑몰 사진을 촬영해 논란이 일고 있다. 서대문형무소의 빨간 벽돌이 바로 눈에 띈다. (쇼핑몰 홈페이지 화면 캡처) ⓒ천지일보(뉴스천지)

시민 “무덤서 찍은 것과 마찬가지”
역사관 “근대 건축문화로 봐야”
전문가 “애국지사의 피·눈물 맺힌 곳”
쇼핑몰, 사과문 게시 “법적 문젠 없어”

[천지일보=이혜림·지승연 기자] 민족의 수난사를 품은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상업적 목적으로 쇼핑몰 사진을 촬영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쇼핑몰은 논란이 일자 “법적 문제는 없었다”면서도 “검토가 부족했다”며 사과문을 게시했다.

1907년 시텐노가즈마(四天王數馬)의 설계로 착공해 1908년 문을 연 서대문형무소는 30년 동안 일제에 저항한 독립운동가를 포함해 35만여명이 수감됐던 곳이다.

최근 온라인커뮤니티에는 ‘쇼핑몰 피팅 장소 잘 생각하고 하시는 게’라는 제목의 글이 게재됐다. 한 온라인쇼핑몰에서 제품 사진 촬영을 서대문형무소에서 했다는 것이다.

해당 사이트에 들어가서 확인해보니 근현대 우리 민족의 수난과 고통을 상징하는 서대문형무소의 빨간 벽돌이 바로 눈에 띄었다. 기자가 실제로 서울시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를 찾아 사진과 대조해봤다. 사진을 바탕으로 쉽게 촬영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 쇼핑몰에 게재된 사진의 벽면과 동일한 서대문형무소 벽면 (출처: 쇼핑몰 홈페이지 캡처) ⓒ천지일보(뉴스천지)

날씬한 모델이 멋진 포즈를 잡고 있는 사진의 배경은 당시 수감자들을 도망치지 못하도록 5m 높이로 지어진 서대문형무소의 망루와 담장이다. 지금은 자유롭게 다니지만 당시만 해도 벽을 사이에 두고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과 가족들이 통곡했던 상처 가득한 장소다.

한 모델이 손으로 집고 다른 모델이 발을 올린 다른 사진 속 계단은 중앙사로 통하는 문이다. 1920년대 건물 원형인 중앙사는 제10·11·12 옥사와 연결된 부챗살 모양의 구조로, 일본군이 옥사 전체를 감시하고 통제했던 곳이다.

옥사 안 하나의 방은 신장 160㎝ 정도 되는 성인 여성이 5~6명 누우면 꽉 찰 정도로 작다. ‘백범일지’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당시 한방에 40~50명의 성인이 옆으로 누워 겨우 잠을 청했으며, 많은 독립운동가가 이 방에서 혹독한 추위에 얼어 죽거나 심한 고문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숨을 거뒀다.

현재 옥사는 ▲간수사무소 ▲형무소 의·식·주 ▲독립운동가 사이의 암호통신인 ‘타벽통보법’ ▲감옥 내 독립 만세운동 등을 재현, 전시하고 있다. 11옥사에선 관람객이 직접 감방에 들어가 수감을 체험할 수 있다.

쇼핑몰 사진을 본 시민은 대체로 ‘해당 업체가 생각이 짧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남자친구와 함께 온 김세연(가명, 여, 26, 서울 관악구 봉천동)씨는 “우리도 커플 사진 찍으러 많이 다니지만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장소인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에서는 찍지 않는다”며 “이곳에서 돌아가신 분들이 많은데, 무덤 앞에서 사진 찍는 것과 다름없다. 생각이 짧은 것 같다”고 개탄했다.

다른 관람객은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문희주(여, 27,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씨는 “뼈아픈 역사를 알리고 돌아가신 분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역사관을 개관한 것으로 안다”며 “상업 목적이 뚜렷한 촬영을 허가해준 것은 형무소 개방 목적에 맞지 않는 것 같다. 문제를 더 깊게 생각하지 않고 내린 경솔한 결정이라 생각한다”고 분노했다.

▲ 한 쇼핑몰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한 것과 관련해 사과문을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출처: 쇼핑몰 홈페이지 캡처) ⓒ천지일보(뉴스천지)

이에 대해 쇼핑몰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촬영은 외부 컨설팅 업체와 진행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다”며 “문의가 많이 들어와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게시판 글을 참고 해달라”고 말을 아꼈다.

쇼핑몰은 10일 게시판에 ‘서대문형무소 촬영 관련 사과문’을 올렸다. 쇼핑몰은 “타사에서 상업용 영상촬영 및 화보 촬영이 진행된 서대문 형무소가 선정됐다”며 “서대문형무소 측과 관련 협의해 공식적인 절차에 따라 촬영했다”고 밝혔다. 이어 “법적이나 절차상의 문제는 없었다”며 “하지만 역사적 의미가 있는 장소에 대한 깊은 검토가 부족했음을 인정하며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덧붙였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측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역사관 관계자는 “문제를 제기한 분들의 의견도 맞다. 서대문형무소는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돼 고초를 겪은 공간이다”며 “하지만 저희 입장에서는 건축 문화적인 면도 봐야 한다. 일제에 의해 이뤄지긴 했지만 우리나라의 근대건축 문화를 보여주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유럽에서 유행하던 건축양식을 들여온 것”이라며 “선정적인 내용이 아니면 허가하고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이재준 역사연구가·전 충북도문화재 위원은 “우리 문화유산 중 관광성이 있는 곳에서 패션 촬영은 문제 되지 않는다”며 “하지만 서대문형무소는 거룩한 애국지사의 피와 눈물이 서린 곳이기에 적절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허가를 내주기 전 역사학자나 독립운동사학자에게 문제 될 부분은 없는지 자문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며 “미국의 독립기념관의 경우 촬영 자체를 금지하고, 상업행위를 할 경우 엄격한 제재를 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잘 판단해서 허가해야 하는데 사려 깊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역사 교육 전문가인 송시내 ㈔우리역사바로알기 교육국장은 “아픈 역사가 있는 곳인데 굳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찍었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며 “사진 촬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역사를 알지 못한다는 증거”라고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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