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우 조셉킴이 자신의 작품인 ‘금강전도’ 앞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금강전도’는 작가가 어느 날 새벽, 차를 마시다가 찻잔 안에 고인 찻물을 보고 영감을 받아 3년여에 걸쳐 집념 있게 완성한 작품이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나는 행복을 그리는 화가”… 초등 때 지병으로 학업중단
서양화·동양화·서예·조각 등 기법 얽매이지 않고 작업
위기를 기회로 바꿔 성장… 전 세계 컬렉터들 주목

[천지일보=박선아 기자] “10대 때는 거리 화가였습니다. 한국을 방문한 컬렉터들 눈에 우연히 띄어 인연이 됐습니다.”

10대의 조셉킴은 처음 만난 컬렉터들로부터 ‘그림이 밝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 밝고 화사한 그의 그림에 대해 조셉킴은 ‘행복을 그린다’고 표현한다. 행복은 조셉킴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어두운 그림을 그리니 실제 성격이 어두워지더군요. 그래서 초심으로 돌아가 행복을 그리자 마음먹었고, 우울해질 때는 붓을 잠시 내려놓습니다.”

조셉킴. 유명한 대학을 나온 것도, 화려한 수상 이력을 지닌 것도 아니지만 세계 유명 미술컬렉터들이 가장 주목하는 한국인 화가 중 한명이다. 컬렉터들은 그를 ‘한국의 반고흐’ ‘한국의 피카소’라고까지 칭하며 그의 그림을 주목하고 있다. 조셉킴을 기자에게 소개한 오정엽 미술평론가는 미래의 ‘국민화가’라고 지칭했다.

◆어둠을 딛고 일어선 꿈쟁이 화가

몽우 조셉킴(42)은 꿈 ‘몽(夢)’자에 벗 ‘우(友)’, 꿈 친구란 의미의 호와 성경에서 꿈을 꾸는 인물인 ‘조셉(Joseph, 요셉)’을 필명으로 사용한다.

“꿈쟁이를 뜻하는 성경인물 요셉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제 꿈이, 그리는 작가도 꿈을 꾸고, 보는 사람도 꿈을 꾸게 해주는 꿈쟁이거든요.”

꽃길만 걸었을 것같은 그의 삶은 사실 우여곡절이 많았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 초등학교 때 학업을 접었다. 일찍부터 동양화, 서양화, 서예, 전각까지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고, 청소년기에는 유대인 스승 밑에서 자신만의 그림 세계를 구축했다. 20살이 채 되기 전에 인사동 거리에서 그림을 팔아 돈을 벌었고, 한때 미국에서 500여점의 그림을 팔며 명성을 얻는가 싶더니 불현듯 자신의 왼손을 망치로 내리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행복을 그린다’는 그의 말처럼 어둠을 딛고 일어선 그의 작품은 그 누구의 작품보다 밝고 화사하다.

조셉킴은 지난달 서울 강남 썬즈비 갤러리에서 열린 ‘2017 현대작가초대전’에서 성하림, 김영근 작가와 함께 전시회를 가졌다. 이어 지난 3~5일 충남 공주 고마 아트센터에서 스웨덴 현지작가와 함께 ‘18~19세기 스웨덴벽지와 조선시대 서당종이 그리고 4명의 나무작가들’이란 주제로 전시를 진행했다.

지난달 말 썬비즈 갤러리에서 만난 조셉킴의 작품 ‘가족의 기도’ ‘금강전도’ ‘황금바다 물고기’ 등 유화 작품 10여점에선 행복, 희망, 여유, 따뜻함 등 긍정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꽃비가 내리는 낙원의 모습과 그곳에 사는 가족의 기도가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이 그려진 ‘가족의 기도’는 조셉킴이 2004년부터 13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이다. 동물들이 어우러져 사는 낙원은 행복함과 여유로움을 선사한다. 특히 한글의 자음과 모음으로 표현한 가족의 모습은 형태와 함께 글자 자체의 의미까지 생각하게 된다.

“가족의 모습인데, 아버지는 아버지의 ‘ㅏ’, 어머니는 어머니의 ‘ㅓ’로 표현했습니다. 아이는 ‘ㅊ’이죠.”

조셉킴은 초등학교 시절 받아쓰기 시간이면 한글을 그림 그리듯이 써서 선생님께 혼이 나곤 했다. 지금도 한글에서 영감을 받는다고. 오는 12일 정음갤러리 개관전시로 진행되는 초대전에서도 한글을 주제로 전시할 예정이다.

▲ ‘가족의 기도’ 50호 F, 캔버스에 유채, 2004년.‘가족의 기도’ 서명은 2004년도작으로 돼 있지만 작가가 애착을 가지고 계속 붓을 대어서 2015년에 완성됐는데 이번 전시에 앞서 작업을 더 진행해 이른바 13년 작업의 결과물이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남다른 삶, 자유로운 그림으로 승화

조셉킴의 그림 속에는 다양한 기법들이 경계를 넘어 한데 어우러져 있는데, 이런 그림 세계는 그의 성장과 맞닿아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화가의 꿈을 품고, 몸이 아파 얼마 못 살 거라는 생각에 공부를 그만두게 됐다. 이후 사진관을 운영하던 아버지를 통해 사진과 초상화, 전각 등을 본격적으로 전수 받았다.

청소년기에는 형과 함께 유대인 스승인 아브라함 차를 통해 다양한 그림 기법과 역사, 문화, 과학, 수학 등 분야를 넘나드는 지식을 쌓았다. 아브라함 차는 스승이면서도 아버지처럼 조셉킴을 도왔고, 자신이 가르치기 어려울 때는 해당 분야 전문가를 초대해 깊이 있는 강의를 들려줬다.

이런 성장배경 덕분에 조셉킴은 기법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그림의 기법이 바뀝니다. 세심하게 그리고 싶은 날은 유화로, 아이디어가 마구 떠오르는 날은 연필 드로잉으로 기록합니다. 또 문득 깨달음이 올 때는 수묵화를 그리기도 하죠. 그리고 오랜 시간 작업하고 싶을 때는 조각을 하기도 합니다.”

몽환적이고 추상적인 그림을 그리는 조셉킴은 사실 20대 초반까지 극사실주의를 추구하며 사진 같은 초상화를 그렸었다. 그러다 사진과 미디어아트 세계를 접하고 자신이 추구했던 그림을 이미 뛰어넘은 작품들을 보며 회의감을 느끼던 어느 날 왼손을 망치로 내리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 ‘꽃과 호랑이’ 6호 F, 캔버스에 유채, 2016년(왼쪽).‘은밀한 곳의 보화’ 6호 F, 캔버스에 유채, 2015년. ⓒ천지일보(뉴스천지)


◆‘위기는 기회’ 왼손 망가져 오른손으로

왼손이 망가져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자 그의 세계는 무너지는 듯했다. 그러나 전화위복이란 말처럼 조셉킴은 포기하지 않고 이때부터 오른손으로 그림을 그리게 된다. 극사실주의 작품이 아닌 자신의 내면세계를 표현한 비구상 화풍을 선택한다.

조셉킴의 오른손 그림은 왼손만큼 정교하지 않았지만 따뜻한 에너지가 있었다. 전시에서 만난 밝고 긍정적인 그림에선 병마, 가난에 수십년을 시달린 그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에너지는 컬렉터들뿐 아니라 그의 몸과 마음의 병까지도 치료해줬다.

“절망적인 그림을 그릴 때 절망을 느꼈고, 고독한 그림을 그릴 때는 나 자신이 고독해졌습니다. 행복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기 위해, 저 자신이 행복하고 기뻐지려고 노력하면서부터 실제로 기쁜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더 많은 분이 제 그림을 찾아주셨고, 그림을 사 가신 분들도 일이 잘 풀렸다고들 하더군요.”

▲ ‘황금바다 물고기’ 6호 F, 캔버스에 유채, 2015년(왼쪽). ‘밤이 활짝 피었다’ 6호 F, 캔버스에 유채. 2016년. ⓒ천지일보(뉴스천지)


◆유명 미술품 컬렉터 토마스 마틴과의 만남

그가 10대 때 개인전을 하고 싶어 인사동을 찾았다가 퇴짜를 맞고 길에서 그림을 팔 때였다. 6개월 동안 꾸준히 그림을 사 가던 한 외국인이 “왜 그림을 파느냐”며 서툰 한국말로 물었다. 조셉킴이 “그림을 팔아 공방을 마련하려고 한다”고 하자 “어느 정도 팔면 되느냐”고 묻더니 그만큼의 그림을 사갔다고 한다.

후원자이자 컬렉터인 토마스 마틴과의 만남이었다. 조셉킴의 재능을 알아본 마틴은 조셉킴이 오른손으로 그림을 다시 시작했을 때도, 빚더미에 앉았을 때도, 육체적인 병과 싸울 때도 꾸준히 그를 격려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마틴 선생뿐이랴. 조셉킴 주변에는 그의 그림과 성품을 사랑하는 많은 컬렉터와 팬들이 꾸준히 그를 응원하고 있다.

꿈꾸는 화가 몽우 조셉킴, 그의 이름처럼 행복한 꿈을 그리고, 긍정의 에너지가 세상에 넘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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