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남한산성’에서 인조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박해일이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청과 신하 사이서 혼란 겪는 인조 분
섬세한 연기로 복합적인 감정 표현
“역사적 평은 안 좋지만 인물에 집중
‘나중에 평가 받자’는 생각으로 촬영”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1636년 인조 15년 병자호란. 청의 대군이 공격해오자 임금과 조정은 남한산성으로 숨어든다. 군사적 열세 속에 서 청군에 완전히 포위된 상황. 이조판서 ‘최명길’은 순간의 치욕을 견디고 나라와 백성을 지키자고 말하고, 예조판서 ‘김상헌’은 청의 치욕스러운 공격에 끝까지 맞서 싸워 대의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 사이에 선 ‘인조’는 번민만 깊어진다.

영화 ‘남한산성(감독 황동혁)’은 나아갈 곳도, 물러 설 곳도 없는 고립무원의 남한산성 속 조선의 운명이 걸린 가장 치열한 47일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인조는 두 신하의 날카로운 논쟁과 갈등 사이에서 ‘무엇이 백성을 위한 선택인가’를 고뇌한다. 고립된 ‘인조’ 역을 맡은 배우 박해일은 섬세한 감정 연기로 고뇌하는 임금의 복합적인 내면을 깊이 있게 표현해냈다.

“인조를 한숨 나게 하는 캐릭터라고 하시던데 이해해요. 극중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는 장면은 사실 실소와 어이없음, 답답함의 대사들이었죠. 그런 것들이 신하들을 난처하게 만들고, 산성 안에 있는 백성들을 위기로 이끌었다는 게 사실이니까요.”

역사를 돌이켜 본 후손들의 인조에 대한 평은 좋지 않다. 이 때문에 배우가 인조 역을 선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박해일은 “배우 입장에선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를 해야 하는데 대체로 인조에 대한 평이 좋지 않다”며 “반대로 생각해봤다. 인조는 제 필모그라피에서 색다른 캐릭터다. 역사적 평가를 배제하고 인물 자체에 집중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영화의 큰 기둥인 최명길(이병헌 분)과의 장면이 많다보니 시너지를 일으킨다. 뭔가 배우로서 많은 부분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며 “인조와 거리를 두려 하는 마음이면 집중하지 못할 것 같아 ‘나중에 평가를 받자’는 생각으로 촬영에 임했다”고 덧붙였다.

▲ 영화 ‘남한산성’에서 인조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박해일이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시작부터 긴장이었어요. 정통 사극이라는 장르를 통해 관객과 만나기로 해서, 작업해보지 못한 배우들을 한꺼번에 만나게 되니 그만큼 준비를 잘 해서 부담감을 떨쳐내려고 노력했어요.”

영화에서 인조가 가장 많이 하는 대사는 “어쩌란 말인가”다. 박해일은 “진심으로 그 말을 하고 싶었다. ‘경들은 어찌 생각하는가’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라는 대사가 많았다”며 “47일 동안 청군들이 산성을 포박한 조선의 운명이 걸린 위태로운 상황에서 누구도 쉽게 결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묻고 답하는 상황이 많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영화는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굴욕'을 처절하게 담아내며 절정에 치닫는다. 당시 분위기에 대해 박해일은 “숨소리만 났던 것 같다. 절하는 곳에 서면 앞에 청 황제가 있는데 사실 무슨 표정인지 보이지도 않는다”며 “황제는 굉장히 높아 보이고, 인조는 더 작아 보인다”고 회상했다.

그는 “절을 할 때 신하의 옷을 입고 있다 보니까 옷이 종잇장처럼 구겨져 인조가 나약해 보이고 비굴했다”며 “뒤에는 최명길이 감정적으로 복받쳐 있는 상황이어서 뭔가 애써 감정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당시 기분을 느끼려고 했다”고 전했다.

“절은 빨리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삼배하는 것을 끊지 않고 찍었어요. 한번 할 때마다 호흡이 달라지더라고요. 실제 인조는 어떤 기분일까 찾아가 면서 촬영했어요.”

영화는 진정한 시대의 지도자는 누구이냐는 화두를 던진다. 박해일도 영화 촬영을 하면서 이 같은 고민을 한 적 있다고 전했다.

그는 “처음 인조라는 역을 맡으면서 한 나라의 통치자가 된다는 것은 피나는 번뇌의 고통을 감수하는 선택의 연속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에서도 대신과의 충분한 이야기 속에서 선택한다”며 “백성을 위한다고 선택했지만 오히려 위기로 내몬 것 같다. 그만큼 선택 하나하나가 신중해야 한다. 인조는 왕의 무게를 짊어지기 부담이 컸던 인물 같다. 그것을 기준으로 삼고 상황에 집중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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