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성애 수녀 ⓒ천지일보(뉴스천지)

조성애 수녀와의 특별한 만남
“사랑하고 용서할 때 이 세상을 생명의 문화로 바꿀 수 있어요”

[천지일보=이지수 수습기자] ‘살아있는 것들을 보라. 사랑하라. 놓지 마라.’ 스코틀랜드 시인 더글라스 던이 쓴 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생명이다. 죄가 있든 없든 생명 그 자체는 소중하다. 그렇지만 한 순간의 잘못으로 타인의 생명을 빼앗고 자신의 생명마저 위태롭게 한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사형수’라 부른다.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봄날 ‘사형수의 어머니’라 불리는 조성애 수녀를 만났다.

“인터뷰 많이 했어요. 한 해에도 몇 번씩 했는지 몰라요. 하지만 우리 형제(사형수)들을 위하는 거니까 하는 거예요.” 그의 짧은 첫 마디에는 사형수들에 대한 애잔함이 담겨 있었다.

조 수녀는 사형수들을 찾아가 성경 말씀을 나누고 기도하며 상담하는 일을 한다. 이뿐만 아니라 가해자․피해자 가족을 만나 상처받은 그들의 마음을 위로해준다. 이 일을 한 지 20여 년이 됐다. 편지도우미를 했던 10여 년까지 포함하면 30여 년 동안 사형수들을 보듬는 일을 해왔다.

“77년도쯤 선배 수녀님이 서대문교도소에서 일하시는 것을 보고 저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젊어서 안 된다는 거예요. 그 대신 재소자들과 편지를 주고받는 일을 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온 거죠.”

30년. 한 사람이 태어나 어른이 될 만큼 긴 세월이다. 조 수녀는 그 긴 세월 동안 외로운 사형수들에게 어머니가 돼 주었다.

그는 서울대 간호학과를 졸업했다. 학교․고아원․병원을 운영했으며 수도원에 들어와서도 심리상담․사회사업․경영 등에 관한 공부를 계속했다.

“제가 이토록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해요. 이 경험을 형제들을 위해 쓰고 싶어요. 교도소 왔다 갔다 하는 게 뭐가 좋겠어요. 하지만 제 마음이 그 사람들에게 가고 싶고, 나눠주고 싶고, 보고 싶으니까 할 수 있는 거예요”라고 겸손히 말했다.

자식이 평범한 인생이 아닌 수도자의 길을 간다고 하면 허락할 부모는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그러한데 60여 년 전은 말할 것도 없다. 조 수녀 역시 수도자가 되겠다고 했을 때 부모의 반대가 무척 심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수녀가 되겠다는 마음은 강해졌다고 한다.

“어릴 적 동생 따라 성당에 처음 나갔어요. 그리고 교장선생님이 수녀였는데 교회와 학교를 오가며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하느님을 위해 저렇게 살아야겠다’고 동경하다가 6‧25전쟁 때 수도원에 있는 수녀들을 봤어요. 그러던 어느 날 수도생활을 하면 많은 봉사를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마음을 굳혔죠.”

▲ ⓒ천지일보(뉴스천지)
조 수녀는 흐트러짐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다가도 사형수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목소리를 떨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형제들 얘기하면 주책없이 눈물이 나요. 그래도 저는 맘껏 울 수 있지만 우리 사형수들은 흐느끼는 소리조차 내지 못해요. 자기 신세가 그렇게 된 것이 가슴 아파 흘리는 눈물도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죄스러운 거예요.”

이어 “그들은 사랑받지 못했어요. 부모한테 버림받은 상처로 인해 마음의 병이 든 거죠. 육체적인 병은 약 먹고 치료할 수 있지만 정신적인 병은 치유하기 어려워요. 많은 것을 파괴 하잖아요”라고 안타까워했다.

지난해 말 어느 사형수와 조 수녀가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마지막 사형수>라는 책이 나왔다. 조 수녀는 이 책 속 실제 주인공이 지금도 가슴에 많이 남아있다고 한다.

“벙어리 아버지와 시력이 약한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는데 애기가 울지도 않고 눈도 잘 못 뜨니까 둑에다 갖다 버렸어요. 동네 사람들이 발견하고 다시 집에 데려다 줬죠. 그런데 결국은 엄마가 집을 뛰쳐 나가버려요. 그때부터 그의 인생은… 말도 마요”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조 수녀는 사형수들이 대부분 버림받은 삶을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저지른 죄가 너무 커 그들의 불행했던 삶이 가려지는 것을 가슴 아파했다. 많은 사형수가 자신이 언제 집행될 지 모르는 가운데 교도서 안에서 반성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죽을 것을 생각하면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어디 있겠어요. 그들도 자신이 저지른 죄를 후회해요. 그래도 ‘염치없이 살고 싶다는 말을 어떻게 하냐’며 집행 후에 하느님 나라에 갈 수 있도록 회개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해요.”

얼마 전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전국에 분산 수용돼 있는 사형수들을 청송교소도로 모두 집결 수용하겠다는 말을 했다. 그 곳은 산과 강이 이중으로 막혀 있는 요새와 같은 곳이다. 이 소식은 조 수녀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그 사람들 사는 날까지 그렇게 모든 것을 통제하면 안 돼요. 한 시간을 살아도 숨 쉴 곳은 만들어 놓아야 지요”라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조 수녀는 “그 소식을 들은 한 사형수가 ‘장관으로서 국민들을 안심시키려면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며 이해하더군요”라고 말했다.

요즘 사형제도 폐지에 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찬성하는 쪽도 있지만 많은 사회단체나 종교단체에서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조 수녀는 사형제도에 관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피해자들 마음 왜 모르겠습니까. 말도 못하죠. 죄를 지었으니 당연히 벌을 받아야죠. 하지만 생명만은 보호해 달라는 거예요. 생명은 아무렇게나 할 수 없잖아요. 그들은 그 안에서 분명 변화되고 있고 회개하고 있어요.”

이어 “모든 것의 해결방법은 그들이 저지른 죄와 똑같이 생명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용서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그들은 치유될 수 있어요”라고 호소했다.

그는 “죽음의 문화에서 생명의 문화로, 보복․저주․복수에 찬 문화에서 사랑과 용서의 문화로 변화된다면 하느님이 처음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뜻하신 대로 우리가 이 세상을 가꾸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라며 바람을 전했다.

올해 여든이 된 조 수녀를 보며 ‘80세 노인이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 수 도 있다.

“작년과 똑같은 길을 걷고 똑같이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말하기를 ‘아! 아직은 괜찮네’ 죽고 사는 것은 하느님께 달려있으니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이 상태로는 못 하겠어요’라는 말은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누가 들으면 저를 웃기는 수녀라고 할 거예요. 왜냐면 한 달 전쯤 ‘아! 나는 하나밖에 없는 하느님의 특허품이야. 나와 똑같은 사람은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조 수녀는 80세 나이에 다른 사람이 쉽게 갈 수 없는 길을 가는 것이 하느님이 주신 특별한 소임이라고 믿고 있다.

이러한 하느님 뜻을 채워드리기 위해 오늘을 반성하고 내일을 새롭게 살아가는 것밖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하는 조 수녀는 마지막까지 이렇게 고백했다.

“부족한 저이지만 하느님 앞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살아갈 거예요. 그래서 저는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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