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개영정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이현정 기자] 진주성이 함락되고 7만 민·관·군이 장렬하게 전사하자 19살 논개는 머리와 옷을 단정히 하고 비장한 각오로 촉석루를 향해 발걸음한다.

진주성 탈취에 성공한 일본 장수들이 촉석루에서 잔치를 벌이고 있을 때 열 손가락에 가락지를 끼고 나타난 논개.

훗날 역사는 그를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남강으로 유인해 끌어안고 함께 강물로 투신한 조선의 의기(義妓)로 평가한다.

전라북도 장수군 출신의 논개가 장수현감이던 최경회(崔慶會)의 후처로 살다가 1593년 제2차 진주성 싸움에 최경회가 순국하자 비상한 각오로 당시 왜군의 잔치에 기생으로 위장해 들어갔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조선 광해군 13년인 1621년에 저술한 유몽인의 <어우야담>은 ‘진주관기 논개는 왜장을 끌어안고 강물에 뛰어들어 함께 죽었다’라고 표현하고 있어 논개가 기생이었다는 것이 정설로 통한다.

논개의 출신이 무엇이든 나라를 위한 충심과 임진왜란으로 쓰러져 가는 나라에 대한 걱정이 후에 일을 도모했을 때 팔이 풀어지지 않도록 열 손가락에 가락지를 끼게 만들었다.

그는 여인의 몸으로 장수의 마음을 가지고 왜적에 대항했던 것이다. 이에 영조 16년인 1739년 경상우병사 남덕하가 논개의 애국충정을 추모하는 의기사(義妓祠)를 촉석루 옆에 세우고, 그 충심과 정신을 계승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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