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강수경 기자] 곳곳에 흩어졌던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한가위 추석. 종교계는 추석을 어떻게 나고 있을까. 종단마다 형식과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의미는 비슷한 점들이 많다. 선조의 영혼을 추모하고 그 후손이 화목한 가정을 이뤄 행복하길 바라는 염원은 각 종교가 매한가지였다.

▲ 유교식 제사. ⓒ천지일보(뉴스천지)DB

◆전통 제사지내는 유교

‘효’ 사상이 핵심인 유교에서는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와 선조에 대한 감사와 예를 올리기 위해 제례를 지낸다. 중용 19장에는 ‘죽은 이 섬기기를 살아계실 때 섬기듯이 한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정신에 따라 유교계에서는 사후에도 상례와 제례를 지낸다. 조상에게 지극한 정성으로 제사를 지내면 조상의 신령이 이를 기쁘게 받아 흠향(歆饗)함으로 인해 하늘에서 복이 내려오는 강복을 받는다고 믿었다.

제사를 지낼 때 순서는 각 지역과 문중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네 단계로 이뤄진다. 먼저 마음을 집중시키고 신령의 임재를 준비하는 단계다. 이 단계에서는 마음을 모으고 음식을 진설하며 신이 임재하는 ‘강신(降神)’을 예비한다. 이후 단계에서는 후손의 효성을 상징하는 제물을 조상의 신령들이 흠향하기를 요청한다. 이때 음식을 올리는 진찬과 술을 바치는 헌작(獻爵) 등을 진행한다.

그다음으로는 신령이 흠향하고 강복할 수 있도록 하는 순서다. 문을 닫는 합문(闔門)을 한 후 다시 들어가서 차나 숭늉을 올리는 헌다(獻茶), 제주가 진설된 음식의 일부를 먹는 수작(受昨) 등이 차례로 이뤄진다. 신령의 흠향이 끝나면 마지막으로 신령과의 작별인사를 나누고 제물을 서로 나눠먹는 음복(飮福)을 한다. 유교에서는 음복과 관련해 효성을 올려 하늘에서 내려준 복을 혼자만 독점하지 않고 이웃과 서로 나눠야 한다고 가르친다.

▲ 조계종 추석 다례제의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DB

◆술 대신 ‘차’ 올리는 불교

불교계도 추석 명절 차례(茶禮)를 드리며 조상 영혼들의 명복을 빌고 있다. 선조들은 차례 상에 술이 아닌 차(茶)를 올려 예(禮)를 다했다는 기록들이 있다. ‘백장청규’에는 추석 차례에 대해 ‘한 솥에 끓인 차를 부처님께 바치고 또 공양드리는 사람이 더불어 마심으로써 부처와 중생이 하나가가 되고 또 절 안의 스님과 신자가 같은 솥에 끓인 차를 나눠 마시면서 이질 요소를 동질화시키는 일심동체 원융회통의 의례가 차례’라고 설명한다.

불교식 가정제사에 따르면 차례 상차림은 간소함을 원칙으로 한다. 살생을 금지하는 불교의 가르침에 따라 고기와 생선류는 제외된다. 육법공양물로써 향 초 꽃 차 과실 밥을 올리고 국과 삼색나물 삼색과실을 갖춰서 상을 차린다. 다른 종교의 제사상과는 달리 독특한 것은 꽃을 올려서 육법공양물의 완성이 이뤄진다는 데 있다.

제사 절차는 부처와 조상의 영혼인 영가(靈駕)를 모신 후 제수를 권한다. 이후 불교 경전이나 게송을 독송함으로 불전을 전한다. 이후 축원문을 올리고 영가에 편지를 올린다. 그다음에는 영가를 돌려보내고 제수 나누기로 제사를 마친다. 이후에는 가족들끼리 음복을 한다.

▲ 천주교의 명절 미사는 가톨릭 전례와 한국인의 전통 제례가 융합된 모습을 보여준다. (출처: 천주교주교회의)

◆제사상 차리고 미사 드리는 천주교

유일신인 하나님을 믿는 천주교는 합동위령미사를 일제히 거행한다. 한국천주교회는 전통 제례를 금지하지는 않지만 표현 양식은 시대와 교회 정신에 맞게 개선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 제134-135조에 따르면 신자 가정에서는 명절이나 탈상, 기일 등 선조를 특별히 기억해야 하는 날에 제례보다 위령미사를 우선해 봉헌하도록 하고 있다.

제134조 1항에서는 ‘제사의 근본정신은 선조에게 효를 실천하고, 생명의 존엄성과 뿌리 의식을 깊이 인식하며 선조의 유지에 따라 진실된 삶을 살아가고 가족 공동체의 화목과 유대를 이루게 하는 데 있다’며 ‘한국 주교회의는 이러한 정신을 이해하고 가톨릭 신자들에게 제례를 지낼 수 있도록 허락한 사도좌의 결정을 재확인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허락한 제례는 유교식 조상 제사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조상에 대한 효성과 추모의 전통 문화를 계승하는 차원에서 그리스도교적으로 재해석한 예식이라는 설명이다. 따라서 한국 천주교 제례의 의미가 조상 숭배의 개념으로 오해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신자들은 분향과 위령기도로써 하느님 앞에서 조상들의 영원한 행복을 기원하며 제대에 촛불을 켜고 향을 피운다. 그 외 성경, 가톨릭 성가, 상장 예식 등을 준비하기도 한다. 음식상을 차릴 때는 형식보다 소박하게 평소 가족들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차린다.

◆추도예배로 영혼 추모하는 개신교

개신교에서는 제1계명 ‘너는 나 외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는 계명을 지키기 위한다며 명절 때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다만 추도 예배로 돌아가신 선조들의 영혼이 복을 받을 수 있도록 기원한다. 추도예배는 돌아가신 부모 등에 대한 추모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형식이나 순서는 일반예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기도-찬송-말씀-기도로 마무리되는 예배 형식을 따른다. 개신교는 선조들의 영혼을 추모함과 동시에 성경에 등장하는 ‘추수’에 의미를 두고 결실의 계절인 가을을 명절을 맞아 한자리에 모이는 가족들과의 화목을 되새긴다. 한국교회에서도 민족 명절 때가 되면 추도예배를 드리는 예배문화가 서서히 정착돼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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