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 서울 심포니오케스트라 대표

“소설쓰고 있네라니…”
개인적으로 잘 아는 대중소설가 한 분이 최근 전화를 걸어와 다짜고짜로 목소리를 높였다.

이 작가는 “기자들이 사실과 다른 왜곡보도를 할 경우 흔히 ‘작문을 했다’느니 ‘소설을 썼네’라고들 하는데 사실은 이 말처럼 진짜 소설가들을 욕보이게 하는 언사가 없다”고 말했다.

얼마 전까지 중앙일간지에 상당히 성행위 묘사 수위가 높은 성인기업소설을 연재해 큰 인기를 모으고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던 이 선배는 “소설가들이 작품을 구상하고, 집필하면서 얼마나 열심히 취재하는지를 안다면 감히 왜곡보도한 언론에 대해 ‘소설 썼다’고 하지는 못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소설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배경으로 등장하는 중국 상하이 칭따오 옌벤 베트남의 하노이 호치민시 등을 수차례 답사했다.

또한 정치권의 복잡한 구도를 취재하기 위해 선후배 정치인을 만나 6개월여간 자료를 수집하기도 했다. 또한 수시로 나를 만나 청와대 내부의 체제와 업무체계를 취재하는 열성을 보였다.

그 열정과 집요함은 기자출신인 내가 보기에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 정도로 사전취재를 열심히 하는 그로서는 언론인들의 왜곡보도나 허위보도가 ‘소설쓰기’로 폄훼되는 것을 용납하기 어려웠을 터이다.

최근 촛불시위 1주년을 맞아 조선일보가 기획한 특집보도에 대해 ‘왜곡보도’ 논쟁이 일었다. 조선일보가 3회에 걸쳐 연재한 ‘광우병 촛불 그 후 2년’ 시리즈가 거센 후폭풍을 몰고 온 것이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조선일보의 촛불 2주년 특집기사를 거론하며 “집중기획 형식으로 이를 재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호평하면서 논란은 한층 증폭됐다.

조선일보의 왜곡보도 논란의 골자는 이 신문과 인터뷰한 관련자들이 “조선일보의 보도는 발언을 일부 발췌하거나 기호에 맞게 짜깁기하는 등 전체적으로 발언취지를 왜곡했다”고 주장한 것의 진위여부다.

미디어비평 매체 등의 보도에 따르면 조선일보의 촛불 2주년 특집지면에 인터뷰를 했던 당사자들은 거의 모두가 자신의 발언취지와 진의가 왜곡됐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10일자 4면 인터뷰 기사에서 “당시 촛불집회에서 읽은 원고는 모두 촛불단체가 써준 것이며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된 ‘촛불소녀’는 조선일보 기사에 대한 댓글에서 자신의 발언이 왜곡됐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대 교수 역시 “내가 말한 의도나 맥락과는 정반대로 부분을 발췌하고 짜깁기를 했다”고 반박했다.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박상표 정책국장 역시 “인터뷰나 취재에 응할 마음이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는 조선일보의 보도와 관련, “운전 중이라 전화통화가 곤란하다고 했을 뿐인데 마치 고의적으로 인터뷰를 거부한 것처럼 보도가 나갔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반박주장이 잇달자 조선일보의 ‘촛불 2년’ 특별취재팀장인 최규민 기자는 13일자 데스크칼럼에서 “누가 소설을 썼느냐”며 왜곡보도 사실을 부인했다. 그는 조선일보에 실린 인터뷰를 반박한 이들 중 누구도 ‘팩트(fact)가 틀렸다’는 얘기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요약하자면 “전문(全文) 그대로 받아써주지 않은 기사는 모두 왜곡이자 짜깁기를 했다는 것이냐”는 게 그의 논지다.

하지만 왜곡보도는 ‘여러 개의 팩트 가운데 기사의 주제에 맞는 것만 인용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폐기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언론학 기사작성론의 상식에 비추어보면 그의 반박은 여간 궁색해보이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서 견강부회(牽强附會)와 침소봉대(針小棒大)가 기원한다.

이번 소동은 사실 조선일보가 촉발한 측면이 있지만 여타의 모든 언론도 ‘왜곡보도’ 논란의 소용돌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보수언론이든, 진보언론이든 정도의 차이야 있지만 자신들의 논지에 맞는 팩트만을 취사선택하는 경향은 여전하다.

특히 천안함사태와 4대강사업 등 시국과 민감하게 얽힌 문제가 이슈화하고 있는 최근에는 정도가 더 심해지고 있다. 바른 언론, 즉 정언(正言)은 사실 전달에서부터 비롯된다.

언론인들이 소설가들로부터 “작가들을 욕되게 하지 말라”는 비방을 듣지 않으려면 ‘사실전달이 언론의 기본적 사명’이라는 초심으로 돌아가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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