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성 프란치스코’ 스틸컷. (제공: 찬란)


영화 ‘성 프란치스코’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수도회를 만들겠다고요? 이 규칙은 신자들의 불순종을 부추기는 겁니다. 수도회 규칙을 수정해오시오.”

“이단 취급을 받고 우리 모두 쫓겨날 겁니다. 교황님 말씀대로 수도회 규칙을 고쳐야 합니다. 수도회도 프란치스코도 잃을 것이오.”

1209년 여름, 프란치스코와 ‘작은형제회’는 평등한 인간, 무소유의 삶을 교리로 삼고 교황청에 정식으로 새로운 수도회 설립을 인준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이상적인 교리라는 이유로 거절당한다. 한뜻을 품고 모인 ‘작은형제회’ 안에서는 리더인 프란치스코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번지고, 분열 위기도 겪었다.

그러나 인가를 받은 후 작은형제회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고, 1219년에 개최된 ‘돗자리 총회’에는 수천 명의 회원이 참석할 정도가 됐다. 작은형제회는 1223년 11월 29일 호노리오 3세 교황으로부터 칙서로 인준을 받았다. 프란치스코는 글을 모르는 평민들에게도 ‘주님의 기도’를 반복하며 수도생활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작은형제회가 표방한 자유와 평등을 기반으로 하는 인본주의 사상은 유럽사회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천주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인으로 꼽히는 프란치스코와 작은형제회의 종교적 삶을 다룬 영화 ‘성 프란치스코(수입·배급·제공: 찬란, 공동제공: 51k)’가 오는 12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평화’를 뜻하는 이름인 프란치스코는 평생을 자유와 평등에 바친 성인으로 천주교인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그가 세운 수도회인 작은형제회가 표방하는 ‘평등’ ‘무소유’ ‘사랑’ ‘용서’의 가치는 당시 “현실과 맞지 않는다” “정말 아름다운 기적이다”는 등 전혀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스크린에서는 신념을 저버리지 않고 뚝심 있게 ‘수도회 설립’이라는 목적을 이뤄내는 프란치스코와 형제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스크린에 등장하는 장면들은 철저한 고증을 통해 탄생된 장면들로 실제 1200년대 이탈리아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한 편의 수채화 같은 아름다운 영상과 경건함을 더해주는 성스러운 음악들이 분위기를 더한다. 영화 ‘성 프란치스코’는 종교적 교리에 바탕을 두고 ‘프란치스코’ ‘에띠엔’ ‘도미니크’ ‘엘리야’ ‘형제들’로 이루어진 5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낸다.

영화의 주인공이자 지금까지도 천주교인들에게 존경 받는 성 프란치스코를 연기한 엘리오 게르마노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배우로서 제63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를 포함해서 유수 영화제에 초청된 실력파 배우다. 프란치스코의 가장 가까운 조력자이자 날카로운 조언자 역에는 다르덴 형제, 프랑수아 오종 등 명감독들의 끊임없는 러브콜을 받는 배우 제레미 레니에가 맡아 열연을 펼쳤다. 연출을 맡은 르노 페리, 아노드 루베 감독은 “성 프란치스코가 일으킨 온화환 혁명과 깊은 휴머니티, 집단적 유토피아에 감명을 받아 영화를 제작하게 됐다”며 연출의도를 밝혔습니다.

현 교황 프란치스코와 이름이 같은 성 프란치스코는 13세기 유럽의 사상, 문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종교인이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이면서, 청년기에 ‘작은형제단’ 수도회를 조직했다. 이 조직이 프란시스코 수도회의 시초다가 된다. 그는 인간과 자연을 사랑하며 청빈한 삶을 살았다. 1224년에는 아레초 근방의 라 베르나 산(山)에서 성흔(聖痕)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만년에는 유명한 ‘태양의 찬가(Carmen Solis)’를 지었다. 사후 2년인 1228년 7월 16일 그레고리오 9세 교황에 의해 시성됐다. 유해는 현재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대성당에 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90년 1월 1일 프란치스코를 생태 주보 성인으로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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