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천지TV=황시연 기자] 나라를 위해 ‘만세’를 부르짖은 소녀 유관순.

97년 전 오늘(28일)은 유관순 열사가 옥중에서 눈을 감은 날입니다.

유관순 열사를 추모하기 위해 3백 여명의 시민들이 이태원부군당역사공원에 모였습니다.

유관순은 조선 중기 광해군 복위음모 사건에 연루돼 정치적 박해를 입은 고흥 유씨의 집안의 자손인데요. 고흥 유씨 집안에서 유관순을 비롯해 9명의 독립유공자가 나왔습니다.

유관순 열사는 어깨너머로 한글을 깨우칠만큼 총명했으며 이화학당의 장학생이기도 했습니다.

1919년 3월 1일.

국민들이 일제의 지배에 항거하여 독립을 선언하고 평화적으로 만세운동을 시작한 사건인데요.

탑골공원 일대에서 유관순 열사와 3천여명의 군중이 태극기를 휘날리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조선총독부의 강제명령으로 이화학당이 휴교하자, 
유관순 열사는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고향인 천안에 내려가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또다시 펼치다 일본군에 잡혀가게 됩니다. (1919년 4월)

경성복심법원은 유관순에 징역 3년형을 선고합니다.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된 유관순 열사는 옥중에서도 독립만세를 부르다 모진 고문을 당했습니다.

유관순은 모진 고문으로 방광이 파열됐고, 그 후유증으로 1920년 9월 28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유관순 열사 유족은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돌아가신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의 뜻을 이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인터뷰: 김정애 | 유관순 열사 조카 며느리)
“해방이 된지 얼마나 오래 됐습니까. 아직까지도 남북통일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 우리 민족이 정말 한이 맺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후손들이 해야 할 일은 남북통일을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 우리 순국선열께서 정말 소망하시던 대한민국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정부는 1962년 유관순 열사에게 건국훈장 독립장(3등급)을 수여했는데요.

3등급에 해당하는 훈장을 받은 것은 유관순 열사가 한 일이 저평가 된 것이라는 논란을 낳고 있습니다.

유관순 열사의 서훈 등급 재평가와 순국선열의 염원인 평화가 이루지길 기원합니다.

(영상취재/편집: 황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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