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학

권달웅(1943~  )

 

소나기 그치고 햇빛 반짝 난
텅 빈 운동장에서 만났다.
어미 따라 길을 나섰다가
길을 잃어버린 땅강아지 한 마리.

딸각거리는 필통 속의 몽당연필처럼
침 묻혀 꼬불꼬불한 글씨를 쓰며
혼자 시오리 길을 가고 있다.

앉은뱅이꽃 피는 시골 학교 마당
구구단 외우지 못해 늦게까지 벌서다가
혼자 듣고 가는 풍금 소리처럼

 

[시평]

지금은 도시에서 볼 수 없는 곤충이나 벌레들이 아주 많다. 어린 시절, 땅을 조금만 파면, 날개가 있는 듯, 없는 듯한 작은 벌레가 기어 나오곤 했다. 때로는 날기도 하고, 비가 오면 앞발로 땅을 파고는 땅속으로 들어가 있기도 하는 벌레. 어른들이 이 벌레를 땅강아지라고 일러주어, 땅강아지라는 앙증맞은 이름으로 우리는 부르곤 했다. 

숙제를 못해서 늦게까지 벌을 서다가, 혼자 집으로 가는 어느 날의 하학 길. 아이들이 썰물마냥 모두 빠져나간 텅 빈 운동장. 그 운동장에서 넓고 넓은 운동장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기어가는 앙증맞은 땅강아지 한 마리 만났다. 그래 너 엄마 따라 나왔다가 길 잃어버리고는 이렇듯 두리번거리는구나. 땅강아지에 덧없이 말 걸어보며 꼬불꼬불 시오리 길을 혼자 가는 하학 길. 

어린 시절의 하학 길. 마당 어느 구석진 자리에 피어 있던 키 작은 앉은뱅이꽃 마냥, 아니 구구단 외우지 못해 늦게까지 벌을 서다가 돌아가는 길에 혼자 들으며 가던 풍금소리 마냥, 기억 속 아련히 피어오르는 어린 시절의 하학 길. 그 하학 길, 딸각거리는 필통 속의 몽당연필 마냥, 그 몽당연필에 침 묻혀 글씨를 쓰며 꼬불꼬불 오늘도 인생의 하학, 그 길을 걸어서 간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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