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익 동북아공동체ICT포럼회장/한국디지털융합진흥원장 

 

앞으로는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악용해 중소·벤처기업의 기술을 빼앗거나 침해하는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이 부과되고 기술유출에 대한 벌금도 대폭 상향된다. 정부는 지난 9월 20일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제20차 국가지식재산위원회를 열고 특허청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련 부처로부터 이런 내용의 ‘국가 IP 전략안’을 심의·확정했다. 성윤모 특허청장은 “우리나라의 지식재산 보호 수준이 낮아 중소·벤처기업의 기술 혁신과 성장이 저조하다”며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중소·벤처기업의 혁신적 아이디어가 비즈니스로 연결되도록 보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중소·벤처기업 혁신 성장을 위한 지식재산 보호 강화 방안’에는 특허법과 부정경쟁방지법을 개정해 기술침해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이 법안이 시행되면 우월적 지위에 있는 대기업이 악의적으로 다른 회사나 연구자의 특허권을 침해하면 법원에서 입증된 손해액의 최대 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액’을 물게 된다. 이는 도급 관계가 아니어도 적용된다. 또한 영업비밀 침해 시 벌금 상한액을 현재보다 10배로 높여 국내 유출 시엔 5억원, 해외 유출 시엔 10억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또 중소기업의 아이디어를 탈취·사용하거나 프랜차이즈 창업을 모방하는 행위는 부정경쟁행위로 규정하고 피해 기업은 법적 조치와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유망 신기술 분야의 중점 지식재산 확보 전략안’에는 총 25개 기술 분야를 선정해 원천·표준·유망 특허의 확보를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유망 신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자나 기업은 기획·수행·활용 등 연구 단계별로 적합한 특허 전략 컨설팅과 금융 지원 등 지식재산(IP) 확보를 위한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또한 정부가 대한변리사회와 협력해 IP 인력 풀을 확보하는 방안과 현재 한국특허전략개발원의 기능과 업무를 확대해 ‘국가전략 IP 통합센터’의 역할을 맡기기로 했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 평가에 따르면 한국의 올해 지식재산 보호 순위는 세계 44위이며, 특허침해 손해배상액은 국내총생산(GDP) 차이를 감안해도 미국의 6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그간 우리나라는 해양플랜트 등 기술 유출에 따른 피해액이 연간 수십조원에 이르지만 처벌 수위가 낮아 논란이 많았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경찰청 등에 따르면 2011년 1월부터 2016년 8월까지 국내 주요 기술유출 사건이 총 268건이었지만 형사처벌을 받은 사람은 83명에 불과했다. 실형을 받은 비율도 고작 35%(30명)였다. 법원의 형량도 낮았다. 법원의 자체 양형 기준에 따라 최대 형량이 법정 최고형(징역 15년)보다 훨씬 낮은 징역 6년으로 낮춰 적용하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사법부가 산업스파이에 대한 처벌에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불만도 많았다. 실제 국가 핵심기술로 지정된 조선·해양 플랜트 설계 기술을 훔쳐낸 산업스파이에게 법원이 징역 4년을 선고해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일기도 했다. 또한 핵심 기술 탈취로 얻을 수 있는 이득에 비해 감수해야 할 ‘비용’이 적어 관련 범죄가 만연하고 있다.

기술 탈취와 기술 유출은 개별 기업의 생존 차원을 넘어 국가의 산업 흥망에 영향을 미친다. 기술 유출도 산업부가 지정한 조선, 반도체, 첨단 소재 등 61개 ‘국가핵심기술’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도 심각한 일이다. 미국은 국가가 첨단 기술 보호를 안보차원에서 ‘경제스파이 방지법(Economic Espionage Act)’을 개정해 기술 유출 범죄를 ‘무(無)관용 원칙’을 적용해 엄단하고 있다. 특히 국가 전략기술을 해외에 유출하면 영업비밀 절도죄가 아니라 ‘간첩죄’로 가중 처벌한다. 국외에서 영업비밀을 부정한 방법으로 접근하거나, 영업비밀을 탈취 시도만 해도 처벌한다. 반면 우리나라의 ‘산업기술보호법’은 피해가 나타나야만 처벌한다. 기술유출 행위에 대한 기소율이 낮고 무죄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행 대법원 양형 기준을 대폭 상향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등 기술 착취와 유출을 엄단할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여론이 그동안 높았다. 그러나 법 규정 강화만으로는 기술유출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 기업들도 기술 인력에 대한 보상체계와 인력관리를 선진화해야 한다. 핵심 기술 탈취와 기술 유출을 막을 강력한 법체계 마련과 더불어 기업의 보안강화 노력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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