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봉 대중문화평론가

사망한 지 20년이 지난 가수 김광석에 대한 사망 논란이 요즘 시끌벅적하다. 자살인가, 타살인가에 대한 논란이 4050직장인들뿐만 아니라 김광석을 겪어보지 못했던 2030세대에서도 화두다.

이처럼 김광석이 사망한 지 20년이 지나도 사망의 진실성이 주목되는 이유는 관객에게 어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아버지, 친구, 소중한 기억, 어린 시절 이야기 등 잔잔한 추억을 회상하게 만들고 선물했던 그가 단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믿는 이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김광석 사망사건을 20년 넘게 취재한 이상호 기자는 故김광석 사망은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며, 사망 당시 혼자 있었다던 서해순씨의 말은 거짓말이며 당시 서씨는 전과 13범의 친오빠와 함께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서씨는 모든 것이 언론의 마녀사냥이라며, JTBC 뉴스룸에 직접 출연해 남편 김광석과 딸 서연양의 사망은 지금 언론이 쏘아붙이고 있는 기사들과는 거리가 멀다고 강조했다.

서씨는 뉴스룸 인터뷰에서 “경황이 없었다”를 수차례 반복했다. 김광석의 저작권료 관련 소송 때문에 딸 서연양의 죽음을 감춘 것이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는 “재판과는 별개로 너무 충격을 받아 미국으로 바로 나갔다. 거기서 일하면서 5년 정도 지내다가 음반 일 등을 정리하기 위해 한국에 나왔다”고 말했다.

서씨는 딸 서연양이 2007년 12월 23일 사망하기 직전에 한국음반산업협회에 최초 저작인접권자로 등록한 사실이 전해졌다. 타이밍이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서연양 사망 전후에는 김광석씨 저작권(작사·작곡가 권리)과 저작인접권(음반제작자 등의 권리)의 소유권을 놓고 한창 소송이 진행 중인 시점으로 서씨는 재판 결과와 상관없이 저작인접권자로 등록한 부분이 많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서씨는 방송에서 서연양의 사망신고가 늦어진 부분에 대해 “빨리 가서 했어야 했는데 경황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신고를 해야 되는 건지 잘 몰랐다”고 말해 논란을 부추겼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서씨가 하는 말에 대해 진정성을 느끼기 어렵다고 느끼고 있다. 과연 경찰이 오래전 종결했던 사건을 얼마만큼 정확하고 팩트에 근거해 여러 가지 의혹을 풀 수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눈여겨 볼 것이다. 2007년 12월 23일 오전 5시쯤 용인 자택에서 쓰러진 뒤 어머니 서씨에게 발견돼 수원의 한 대학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오전 6시쯤 숨졌다는 서연양의 정확한 사인이 무엇인지, 사망 전 서연양의 행적은 어떤 경로를 거쳤는지, 메모광이었던 김광석의 일기장엔 무엇이 적혀있었는지, 아직 진실에 대해 함구하고 있는 다양한 증인들의 이야기도 꺼내볼 필요가 있다.

딸의 사망 이후 돌연 하와이로 떠나버린 서씨에 대한 행적도 수사가 필요할 것이다. 최초 저작인접권자로 왜 그 시점에 돌연 한국을 떠났는지, 하와이와 한국을 오가며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일을 행했는지에 대한 수사도 필요해 보인다. 또한 그 많은 김광석의 저작권료를 통해 어떻게 재산을 보유하고 운영하고 있는지에 대한 조사도 진행돼야 할 것이다.

최근 정의당 추혜선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김광석 특별법’으로 불리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추 의원은 미제사건으로 끝난 화성 연쇄살인사건과 황산 테러, 개구리소년 사건 등을 예시로 들며 재수사를 위한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법은 조건을 충족하는 2000년 8월 이전 변사자에게 공효시효 없는 재수사를 소급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발의안은 ‘살해 의혹을 제기할 수 있는 새로운 단서가 발견되고,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으며 그 용의자가 생존해있는 경우’를 조건으로 명시했다. 지금도 대학로에 가면 김광석에 대한 공연이 상영 중이다. 현실적인 삶에 고되고 힘들어하는 많은 현대인들은 위안을 찾고자 김광석의 노래를 여전히 즐겨 듣는다. 지금도 삶의 목표를 잃어가고 있는 많은 대한민국 젊은이들은 무엇보다 김광석의 진짜 사망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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