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쑨쉰 작가의 작품 (왼쪽부터) ‘Xie Zhi’ ‘Pegasus’ ‘Suan Ni’ ‘Xia (Mythical Fish Creature)’. (제공: 아라리오갤러리) ⓒ천지일보(뉴스천지)

전통회화처럼 서술적 요소 강하지만
작가 특유의 유머 감각 담겨 있어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치미, 이문이라고도 불리는 ‘망새’는 전통 건축 양식의 용마루 끝 쪽 장식을 일컫는 이름으로, 중국에서는 악한 기운을 쫓고 재난을 방지한다고 여겨졌다. 중국 명나라 때 호승지(胡承之)가 지은 ‘진주선(眞珠船)’이라는 책에서는 용의 아홉 아들을 망새에 장식했다. 진주선에 따르면 용은 비희(贔屓), 이문(螭吻), 포뢰(浦牢), 폐안(狴犴), 도철(饕餮), 공하(蚣蝦), 애자(睚眦), 산예(狻猊), 초도(椒圖) 등 각각 나온 순서에 따라 이름이 붙여졌다. 중국은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진 아홉 마리 문양을 건축과 도구에 맞게 새겨 사용했다.

중국의 젊은 작가 쑨쉰(孙逊, 37, 남)이 한국과 중국의 공통된 문화 가운데에서 전통과 신비함에 초점을 맞춘 작품을 선보인다. 쑨쉰 작가의 국내 첫 개인전 ‘망새의 눈물(鸱吻的泪)’전이 오는 11월 5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열린다.

쑨쉰의 작품은 아라리오갤러리 전 층에서 관람할 수 있다. 지하 1층에는 전통적인 색이 가득 담긴 회화와 설치미술이, 지상 2층에는 현대문화와 접목한 회화가 전시돼 있으며, 지상 1층은 영상으로 두 장르를 이어준다.

쑨쉰은 북한과 몽골의 접경지 중국 랴오닝성의 작은 광산 마을 푸신에서 태어났다. 그는 덩샤오핑이 주도한 개혁개방(1978)으로 인한 변혁의 물결이 한창이던 1980년에 태어난 바링허우(1980년대 생을 일컫는 말) 세대다. 바링허우 세대는 문화혁명을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듣고 자랐으며, 사회주의 체제를 학습한 뒤 시장경제 체제에 적응해야 했다.

▲ 전시장 2층 전경. (제공: 아라리오갤러리) ⓒ천지일보(뉴스천지)

이 같은 배경은 그의 작품에도 영향을 끼친다. 쑨쉰의 작품은 전통회화와 같이 서술적 요소가 강하지만 계몽·종교·정치적인 주제와는 거리를 두고 작가 특유의 유머 감각을 통해 관람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한국과 중국은 공통적으로 근대화라는 명목 하에 서구화를 경험했다. 덕분에 같으면서도 다른 양상이 다양한 분야에서 드러난다. 쑨쉰의 작품은 두 나라 간 문화를 동시에 드러내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전시 주제인 망새도 마찬가지다. 망새는 파도를 통해 비를 내리게 해서 화재로부터 집을 보호해주고 복을 가져준다고 여겨졌다. 집을 보호하는 망새가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쑨쉰 작가는 “양국 고유의 전통과 아름다움이 서구문물과 현대문화의 영향으로 인해 점차 자리를 잃어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것을 상징한다”면서도 “그 슬픔을 새로운 변화로 기쁘게 맞이하는 두가지 감정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그는 전시를 열 때마다 해당 지역의 특징을 작품에 담으려고 한다. 쑨쉰 작가의 이번 전시도 한국의 역사적 배경에서 출발한다. 전시를 위해 2년 전 한국에 온 쑨쉰 작가는 광화문의 기와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는 “한국 문화를 제 작품에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 고민했다. 광화문 기와가 눈에 들었다”며 “기와 위 동물들은 건물을 보호하고, 복을 가져다주는 것을 상징한다. 우리는 이러한 동물무늬를 매일 보지만 왜 동물이 저기에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 쑨쉰 작가가 작업 중인 모습. (제공: 아라리오갤러리) ⓒ천지일보(뉴스천지)

지하 1층에서는 주제가 잘 드러나는 세로 3m, 가로 7m 크기의 작품 7점을 볼 수 있다. 언뜻 보기엔 평범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이색적이다. 봉황에는 머리 대신 트럼펫이 달렸고, 물고기 몸엔 시계탑이, 삼장법사 몸엔 용모리가 달렸다. 쑨쉰 작가의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서양 색채가 담긴 오브제다.

쑨쉰 작가는 “나는 중국 사람이기 때문에 중국전통을 많이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전통만 이야기하면 재미도 없고, 발전도 없다”며 “세계사에 영향을 끼친 물건, 사건 등 이야기를 결합해 넣는다”고 말했다.

지하 1층 전시장 한가운데에는 키네틱 아트(움직이는 조형물) ‘The Book of Totem(2016)’이 설치됐다. 일정 시간이 되면 기계가 수묵화로 그려진 불경에 나오는 부처의 32가지 상(相)이 담긴 책을 한 장씩 넘긴다.

지상 2층에 전시된 작품은 같은 작가의 전시가 맞나 싶을 정도로 차분한 분위기다. 그럼에도 작가의 유머 감각은 잃지 않았다. 가로 6m에 달하는 ‘The Dragon in Sky(2015)’는 특수 제작된 바크지 위에 산수화 방식으로 그려졌다. 이 작품도 쑨쉰 작가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오래된 유물처럼 보이는 작품 왼쪽에 있는 호랑이는 눈치를 보고 있으며, 가운데 있는 머리가 책인 돌이 날개를 달린 채 날고 있다.

쑨쉰 작가는 “오래된 산수화 느낌을 주려고 고의로 작품을 노후화했다”며 “관람객들이 현대 작가가 제작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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