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재욱 충남대 명예교수

 

우리 몸은 60조개가 넘는 세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세포의 핵 안에는 유전자(DNA)를 간직하고 있는 46개(2n=46)의 염색체가 들어있다. 이 46개의 염색체들은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각각 23개씩 물려받은 것으로 22쌍의 상염색체(常染色體)와 성의 결정에 관여하는 1쌍의 성염색체(性染色體)로 구분이 된다.

X와 Y로 구분해 나타내는 성염색체 조성에서 X염색체와 Y염색체를 하나씩 지닌 남성은 XY, X염색체만 두 개를 지니고 있는 여성은 XX로 표기한다. 그래서 모양과 크기에 따라 염색체를 구분하는 핵형이 남성은 2n=44+XY, 여성은 2n=44+XX가 된다. 
유전자가 성염색체상에 놓여 있어 남녀에 따라 발현 양상이 다르게 나타나는 유전현상은 성연관 유전이라 부른다. 대표적인 성연관 유전의 실례로는 X염색체에 연관된 색맹이나 혈우병의 유전을 들 수 있다. Y염색체에는 남성의 성(性) 결정인자로 불리는 SRY 유전자 외에는 특정 형질을 발현하는 유전자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X염색체가 여러 개인 경우에도 Y염색체가 존재하면 남성이 된다.

적색과 녹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적록색맹은 X염색체에 들어있는 열성유전자에 의해 나타나는 유전현상이다. 정상인 X염색체에 대비해 열성유전자를 지닌 X염색체를 X'로 표기해 나타낼 때, 남성은 X염색체를 하나만 지니고 있기 때문에 XY는 정상이며, X'Y는 색맹으로 나타난다. 그에 비해 여성은 X염색체만 두 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XX는 정상이지만, 열성유전자 하나를 지닌 XX'는 외형적으로는 정상이지만 색맹 형질을 지닌 보인자(保因子)이며, X'X'는 색맹으로 나타난다.
아버지가 색맹(X'Y)이고 어머니는 정상(XX)인 집안에서 태어나는 자녀들의 유전 현상은 어떻게 나타날까. 이 경우 색맹인 아버지에게서는 X'염색체를 지닌 정자(n=22+X')와 Y염색체를 지닌 정자(n=22+X)가 생성되며, 정상인 어머니에게서는 X염색체를 지닌 난자(n=22+X)만 만들어진다. 따라서 아버지로부터 Y염색체, 어머니로부터 X염색체를 받아 태어나는 아들은 성염색체 조성이 XY가 되어 아버지가 색맹이지만 정상으로 태어난다. 그에 비해 아버지로부터 X'염색체, 어머니로부터 X염색체를 받아 태어나는 딸들은 어머니가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보인자(XX')로 태어나게 된다.

상처를 입었을 때 혈액 응고가 잘되지 않아 출혈이 멈추지 않는 혈우병도 X염색체와 연계된 열성 성연관 유전병이다. 혈우병이 중증일 경우 가벼운 찰과상이나 베인 상처를 방치할 경우 출혈이 멈추지 않아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혈우병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가의 얘기가 꼽히고 있다. 빅토리아 여왕은 부모 중 한 쪽의 유전자 변이로 혈우병 유전자가 생겨나 그 유전자가 전해져 보인자로 태어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빅토리아 여왕의 자녀들(4남 5녀)  중 아들 하나가 혈우병 인자를 지니고 태어나고, 두 딸이 보인자로 태어났다. 보인자인 두 딸은 당시 국가 간의 동맹 관계를 강화하는 관례에 따라 한 딸은 러시아 로마노프 왕가의 황제 니콜라스 2세와 결혼했고, 다른 딸은 스페인의 부르봉 왕가로 시집을 가서 혈우병 인자가 손자와 손녀들에게까지 전달돼 혈우병이 유럽의 여러 왕가로 퍼지게 됐다. 그래서 혈우병은 ‘왕가의 병’으로도 불리기도 한다.

다른 성연관 열성 유전병으로 뒤센병(튀센근위축증)이 있다. 이 질환은 근력이 약화되며 근육조직이 소실되는 질병으로 어린 시절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12살이 되기 전에 거의 휠체어를 타게 되며, 20세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하게 된다.

뒤센병의 유전자를 색맹에서처럼 우성은 X, 열성은 X'로 나타낼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뒤센병 증상이 없는데 아들이 뒤센병으로 태어났을 경우 아버지의 유전형은 XY로 정상이며 어머니의 유전형은 XX'가 된다. 따라서 딸들은 정상(XX)이나 보인자(XX')로 태어나지만, X염색체를 하나만 가지고 있는 아들은 보인자인 어머니로부터 X나 X' 중 하나를 받아 태어나게 되기 때문에 두 명 중 한 명이 뒤센병 환자로 태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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