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예상했던 대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유엔 무대 데뷔 작품은 수준 미달이었다. 물론 뭘 특별히 기대한 건 아니지만 명색이 미국 대통령으로서, 게다가 대통령 취임 이후 첫 유엔총회 기조연설이 아니던가. 북한이 미국을 향해서 핵무기까지 탑재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쏘아내는 형국이라면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은 좀 특별했어야 했다. 지금의 위기 국면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 그리고 이를 통해 미국민의 안전과 국제사회의 신뢰와 평화를 어떻게 담보할 것인지를 제시했어야 했다.

미치광이 전략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을 향해 새로운 해법보다는 맹비난을 쏟아냈다. 북한 김정은을 ‘로켓맨’이라고 지칭하며 자신과 북한 체제를 자살로 몰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엄청난 인내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동맹국들을 지켜야만 한다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totally destroy) 이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시 말하면 미국과 동맹국이 위협을 받는다면 북한 정권과 주민들까지 모두 쓸어버리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셈이다. 역대 미국 대통령의 발언 가운데 가장 ‘강력한(?)’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한 나라의 국민들까지 죽여 버리겠다는 발언을 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곳은 세계 각국의 국가원수 90여명을 비롯해 193개 회원국이 모여 있는 유엔 총회장이 아닌가. 

트럼프 대통령의 이 발언은 즉시 엄청난 반발을 초래했다. 세계 각국의 정상들은 당황하는 모습이 뚜렷했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상식 밖의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저명한 언론들도 타인이 예측할 수 없도록 만드는 ‘미치광이 전략(Madman Strategy)’의 일환이라고  평가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깡패 두목’의 연설처럼 들렸다고 비판했다. 자칫하면 미치광이 언행이 그렇듯이 정말로 쓸어버릴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는 북한 김정은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다. 북한에 조금이라도 위협이 가해진다면 미국 괌은 물론 본토까지 핵무기를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로 초토화 시키겠다는 ‘강력한(?)’ 발언도 미치광이 전략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이 또한 온전한 인식체계로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짜 심각한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사실상 동급으로 취급되는 현실은 합리적 전망을 더 어렵게 하는 ‘위험 신호’라는 점이다. 트럼프와는 달리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의회’가 미국에 있다는 점이 그나마 천만대행이라 하겠다. 최소한 이 대목만큼은 문재인 대통령이 먼저 나서야 한다. 트럼프가 운전하는 승용차에 동승만 할 것이 아니라 남북은 물론 북미가 어디를 향해 질주하는지 냉철하게 현실을 봐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위험 신호를 직시했다면 빨리 새로운 길을 제시해야 한다. 좌고우면할 때가 아니다. 미치광이 전략에 우리 국민과 국익까지 고통을 계속 감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한미 정상회담이 작은 변곡점이 될 수 있을지 그 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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