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고백하건대, 수십년 동안 축구 자체보다는 월드컵을 즐겼다. 국내 프로축구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 월드컵 본선이나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한국 축구가 다른 나라와 경기를 가질 때면 큰 흥미를 갖고 지켜봤다. TV 중계를 통해서든, 신문과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서든 월드컵 소식만을 잘 챙겨서 보는 편이었다. 프로축구보다는 월드컵의 즐거움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축구 기자를 한 적이 있는 필자도 그런데 일반 스포츠팬들이 월드컵에 관심을 먼저 보이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월드컵에서 국가대항전 형식으로 치르는 경기를 보는 것은 축구 이전에 강렬한 민족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짜릿한 흥분을 주기 때문이다.

한국 스포츠팬들은 그동안 한국 축구를 통해 기쁨과 슬픔, 환희와 좌절 등 희로애락의 파노라마 같은 드라마를 즐겼다. 2002 한·일월드컵은 전 국민을 월드컵팬으로 열광케 했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한국대표팀은 사상 처음으로 16강에 올랐고, 이어 8강, 4강까지 오르며 단군이후 최고의 성적을 거두면서 월드컵을 전 국민적 축제로 만들었다. 

히딩크 감독은 2002 한·일월드컵 한 번의 인연으로 한국팬들에게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최고의 감독으로 깊이 자리 잡았다. 한·일월드컵 이후 다시 돌아간 히딩크 감독의 거취는 한국팬들의 기대감을 반영하듯 언론에게 큰 관심의 대상이 됐었다. 네덜란드 아인트호벤, 잉글랜드 첼시 감독을 지냈고, 호주, 러시아,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던 그의 동선은 빠짐없이 보도됐다.

한·일월드컵 이후 계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한국 축구가 부진할 때마다 히딩크 감독의 이름이 거론되곤 했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아드보카트 감독이 예선 탈락한 이후 히딩크 감독 얘기가 나왔으며,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허정무 감독이 16강 진출에 성공하자 한동안 잠잠하다가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홍명보 감독이 예선에서 수모를 겪은 뒤 다시 불거졌다. 

슈틸리케 감독이 2018년 러시아월드컵에 대비해 취임한 뒤 지역예선에서 고전하다 그를 이은 신태용 감독이 지난 7월 이후 2경기에서 단 한 골도 넣지 못하자 팬들이 등을 돌리며 히딩크 감독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번에는 때맞춰 히딩크 감독쪽의 적극적인 제스처가 나왔다. 히딩크 감독은 네덜란드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조언을 통해 한국 축구를 돕겠다”고 설명해 본격적인 논란의 불을 붙였던 것이다.

대표팀의 경기력 부진과 언론 등의 문제 제기 등으로 곤욕을 치른 대한축구협회는 여론의 등에 떠밀리는 듯한 인상을 지우며 내주 기술위원회를 열고 히딩크 감독의 ‘역할론’에 대해 본격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기술위에서는 대표팀의 이란, 우즈베키스탄전의 경기 내용을 분석하면서 한국 축구를 위해 기여할 용의가 있다는 히딩크 감독의 역할에 대해 위원들 간에 열띤 토론을 벌일 것으로 알려졌다.

히딩크 감독의 풍부한 경험을 대표팀이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중요한 문제이다. 한국 축구가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의 역할 여부에 따라 예선 통과에 힘을 얻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드러난 현 대표팀의 경기력 갖고는 예선 통과가 힘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히딩크 감독의 역할은 필요하리라 본다.

히딩크 감독은 2002년 이후 15년이 지난 현재, 71세의 고령의 나이로 예전과 같은 지도력을 발휘하기는 힘들지 모르지만, 오랜 경륜과 안목으로 거친 풍랑을 헤쳐 나가야 하는 한국 축구에 해법을 제시해 줄 것으로 보인다.

열렬 축구팬이 아닌 순수 월드컵팬으로서 내년 2018 러시아월드컵이 손꼽아 기다려지는 것은 ‘히딩크’라는 특수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