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준 민속 칼럼니스트 

 

일년 내내 시집살이하던 며느리가 추석전후로 딱 하루 친정 엄마를 만나러가던 풍속 ‘반보기’.

“하도 하도 보고 지워/ 반보기를 허락받아/ 이내 몸이 절반 길을 가고/ 친정 어메 절반을 오시어/ 새중간의 복바위에서/ 눈물 콧물 다 흘리며/ 엄마 엄마 울 엄마야/ 날 보내고 어이 살았노…” 전래민요 ‘반보기’ 내용의 일부다.

친정까지 반만 간다고 해서, 친정 가족들 반만 만난다 해서, 또 눈물에 가려 어머니의 얼굴이 반만 보인다 하여 ‘반(半)보기’라 불리던 애틋했던 풍속이다.

당시 며느리들에게 언감생심 친정나들이는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녀의 눈물어린 상봉은 한나절의 짧은 만남으로 끝났다.

‘반보기’는 하루에 다녀올 수 있는 거리에 친정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지역에 따라 중로보기(中路-), 중로상봉(中路相逢)이라 불린다. 

반보기 장소는 보통 중간쯤이지만 딸이 오기가 쉽게 시집 쪽에 가깝고 경관 좋은 곳이나 고갯마루에서 이루어졌다. 

약속한 날이면 딸은 친정어머니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갔고, 친정어머니 역시 딸에게 줄 보따리가 묵직했으리라.

여성의 외출이 금기시 되던 유교사회였던 조선시대. 여성은 출가외인이라 하여 자기 마음대로 친정을 방문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친정에서 딸이 보고 싶다고 사돈댁을 찾기도 어려웠다. 예의라는 절차 때문에 사돈 간의 방문은 지금도 어려운 일이다.

처음에는 모녀간의 상봉과 그리움 해소라는 회포 풀기가 주된 목적이었지만 차츰 안사돈 간의 교류로 이어졌고 동년배 간의 교류, 지역 간의 공동체 교류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그래도 며느리 입장에서는 한나절이나마 친정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고 고마운 시간이었을 게다. 갖은 시집살이에 얼마나 친정이 그리웠으면 ‘근친길이 으뜸이고 화전길이 버금이다’라는 속담까지 생겼을까?

조선시대 통치이념이었던 유학사상은 남존여비(男尊女卑) 사회를 만들었고 여성이 받는 대우는 비참했다. 칠거지악(七去之惡)이 대표적 사례다. 시어머니에게 순종하지 않거나, 아들을 낳지 못하거나, 바람을 피웠거나, 질투가 심하거나, 병이 있는 경우, 말을 함부로 하는 경우, 도둑질을 한 경우에는 쫓겨났다.

아울러서 여자는 어릴 때엔 부모를 따르고, 출가해서는 남편을 따르고, 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따라야 하는 삼종지도(三從之道)가 도덕률이고 관행이었다. 출가한 딸은 외인 취급을 받았고 아내의 지위는 아들 다음이었다.

남아선호사상도 고려시대 이후에 나타나기 시작해 조선시대 후기에 와서 아버지와 아들로 이어지는 부계 가족제도가 강화됨에 따라 남존여비사상은 더욱 깊게 뿌리를 내렸다.

이제 반보기는 사라졌다. 최근에는 추석이 사흘 연휴로 정착되고 교통수단이 발달함에 따라 시댁 차례나 성묘를 마치면 친정에 다니러 가는 것이 자연스레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언제나 오갈 수 있는 승용차 때문에 반보기이다. 저마다 차를 몰고 와서 잠깐 머물다 떠난다. 부모들은 손자손녀 얼굴 익힐 겨를도 없다. 새로운 반보기 풍속이다. 

반보기 풍속은 사라졌으나 아직도 사회 곳곳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과 부당한 대우는 여전하다. 모임이나 술자리 건배사 가운데 ‘남·존·여·비!’가 있다. “남자가 존재하는 이유는 여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란다. 과연 남녀평등의 시대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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