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전술핵 한반도 재배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게 외교·안보전략상 옳았을까. 일정기간 ‘NCND(Neither Confirm Nor Deny)’를 유지하며 비장의 대북외교정책 카드로 남겨두면 어땠을까. 사드 문제가 아니라 이 문제야말로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을 지키는 게 협상력 유지와 위험 회피에 유용하지 않았을까. 사석에서 필자에게 이 같은 사견을 밝히는 지인들이 많다. 그중 상당수는 대선 때 문재인 후보 대통령 당선에 열광한 지지자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술핵 재배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14일 미국 CNN 인터뷰를 통해 분명히 했다. 송영무 국방장관은 이보다 앞서 4일 국회 국방위에서 “(전술핵 재배치를) 다양한 방안 중 하나의 대안으로 깊이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가 문 대통령 CNN 인터뷰 이후인 18일 입장을 180도 바꿨다. 청와대가 “생각해본 적 없다”며 수습에 나서자 송 장관은 “합당치 않다. 배치하지 않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현 정부 안보정책에 표출되고 있는 말도 안 되는 내부 ‘혼선’이다. 국방부 장관 발언이 우왕좌왕하는 것도 그렇지만, 손에 꼭 쥐고 있어야 할 카드 하나를 우리 스스로 내던진 것만 같아 불안하다. 1991년 워싱턴이 한반도 전술핵의 철수를 결정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 그중 한국 내 과격세력에 의한 통제권 상실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한반도비핵화에 집착하느라 북핵 비대칭전력이 극도로 심각해진 지금과는 완전히 상황이 다르다.

전술핵 재배치가 아니라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필자는 대략 두 개의 대안을 떠올려보았다. 그 하나는 ‘선(先) 남북연합-후(後) 남북통일’ 방안에 남북이 합의하는 것이다. ‘제2의 한국전쟁 위기’라는 지금의 엄혹한 상황에서 좀 뜬금없는 얘기다. 그렇긴 해도 절대 불가능하지 않다. 북한은 흡수통일에 대한 우려로 북핵·미사일 개발에 주력해왔다. 때문에 북한의 급격한 붕괴를 원치 않으며 남·북협력과 북·미협력을 통해 평화적 공존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안겨줘야 한다.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에서 나아가 획기적인 북·미관계 개선이 전제돼야 한다. 군사적 대립 상태를 해소하는 것은 물론, 남북경협을 통해 북한을 글로벌경제권에 끌어내 변화를 유도하면서 남북연합·통일이라는 새 국가체제로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체제위기 극복을 위한 것이라며 북한이 매달려온 핵·미사일 개발은 중단된다. 이미 기술적으로 고도화된 북핵은 국제사찰 대상으로 두고 감시하되 오랜 대립과 갈등을 거쳐 동질성을 회복한 한민족의 공통자산으로 남게 한다. 그러나 이 또한 현재의 한반도위기국면부터 극복돼야 논의가 가능하다. 한·미연합 방위능력이 확실히 우위에 서도록 강화시켜 놓은 다음에나 북한과 대화하고 평화통일 노력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나머지 방법 하나는 한국 자체 핵무장이다. 핵우산이 비정기적이고 먼 거리에 있다면 대북억지력을 보장할 수 없다. 예컨대 북한이 EMP(전자기펄스)탄(彈)을 한반도 상공에 터뜨려 한·미 군부대의 전자·통신을 완전 마비시키는 동시에 번개같이 핵을 터뜨리는 선제공격을 감행할 경우 괌의 핵우산은 무용지물이다. 괌배치 전략자산이나 태평양의 항공모함이 한반도에 출동하기에는 늦다. 미공군 B-1B 폭격기 랜서가 한반도에 전개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엄청난 예산을 감안할 때 랜서를 한반도 상공에 상시 출격시키는 것도 쉽지 않다.

어느 국가 어느 집단이 평화공존을 버리고 같이 공멸하는 길을 택할까. 핵보유국끼리는 국경분쟁이 발생해도 핵전쟁으로 쉽게 비화되지 않는다. 역설적이지만 결국 핵전쟁을 억제하는 것은 핵일 수밖에. 핵무장이면 국가안보는 ‘일당백’식으로 확고히 갖춰진다. 다만 한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해야 한다. 이로 인한 국제외교·경제적 고립이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될 수 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꼴이 될 터. 이를 보아도 지금 현실적으로 가장 유용한 해답은 한미동맹 강화와 전술핵 한반도 재배치임을 알 수 있다.

가속페달을 밟아 참으로 위험하게 내달리고 있는 북한이다. “이제 종착점에 거의 다다랐다. 끝장을 보아야 한다”고까지 했다. 북·미협상이 비상한 외교적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면 핵포기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중국이 북한비핵화노력에 큰 성의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사드 못지않게 꺼림직해 할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 카드를 왜 미리 버릴 것인가. 중국과 북한의 태도변화를 이끌어내는 외교적 노력이 선행돼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전술핵 재배치에는 비용문제, 법적 문제, 미국의회 승인 문제, 중국·러시아의 반발 등이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걸림돌을 뛰어넘어서라도 전술핵이 재배치되지 않으면 미국 핵우산의 실효성이 담보되지 않는데 어쩌란 말인가. 왜 전술핵을 재재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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