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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평론] 관리는 무릇 백성을 복되게 해야 한다 (3)
뉴스천지  |  newscj@newscj.com
2017.09.17 21:4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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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우성룡: 천하제일청백리’, 이 드라마는 나라와 시대를 떠나서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적폐청산을 내세우고 이전정부가 저질러온 각종 폐단과 사회 전반에 남아있는 구태를 청산하는 데는 뭐니 뭐니 해도 공직자의 애국 애민하는 자세가 기본이다. 관리가 치자(治者)의 입장에서 국민을 피치자(被治者)로 보느냐, 그렇지 않으면 봉사자로서 국민을 섬기는 대상으로 보는가, 그 관점에 따라 사정은 다르다. 그동안 관리나 정치인들은 국민을 위한 봉사자, 국민의 머슴임을 수없이 말했지만 구호로 그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특히 새 정부에서도 멈춰지지 않는 인사 참사와 국민 갈등이 첨예화되는 지금은 공직사회 지도층부터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더욱 필요한 시기이다. 국가·사회가 위기에 처할수록 ‘국가의 안위는 민심에 달려 있고, 민심은 사람을 쓰는 행정에 달려 있다’는 말이 절실히 느껴지는 요즘, 아시아앤에서 방영되고 있는 중국역사 드라마 ‘우성룡’은 진정한 관리가 어떠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바, 드라마로서 재미를 떠나 큰 울림을 주고 있다.

드라마에서 천해령을 위반해 죽음 직전에 내몰린 백성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우성룡은 강친왕을 찾아갔지만, 그 속셈을 알아차린 강친왕은 빨리 사형집행 하라고 독촉했고, 우성룡은 뜻을 굽히지 않는다. 그는 ‘사사로운 생각을 탐하지 않고/ 사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시시각각 천하 만백성을 살피고/ 언제나 종묘와 사직을 가슴에 품으면/ 대장부는 일을 행할 때 삶과 죽음마저도/ 초연하다’는 평소 소신 대로 백성을 위해 불길 속을 마다하지 않는데, ‘대도가 행해지면 천하가 공평무사해진다(大道之行 天下爲公)’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찰사 우성룡은 천해령 위반자 3천여명에 대해 재심해 억울한 백성을 구해낸 공로를 인정받아 복건 안찰사(정3품)에서 포정사(종2품)로 승진한다. 전쟁 지원 인부 3만명 징집명령을 받은 포정사는 복건성 전체 호적조사 결과를 강친왕에게 올리면서 “전쟁 지원에 가장이 전부 징집되면 전쟁이 끝나기도 전 백성생활이 파탄 나니 먼저 민심을 살펴 국가안위를 튼튼히 해야 한다”고 호소했고, 징집인원을 절반으로 감면해 복건성 백성들의 부담이 줄게 됐다. 우성룡의 충정과 백성 사랑하는 행동을 상소 받은 강희황제는 그를 직예순무(지금의 북경, 하남, 하북, 산동 등 수도권 관장)로 승진시킨다. 직예에 10년간 가뭄이 들어 아사자가 속출하자 우성룡은 죽음을 무릅쓰고 백성 구휼이 먼저라며 황실창고를 열어 백성의 기아를 해결한다. 이와 같이 우성룡은 어느 공직에서든 청렴한 관리로서 백성을 하늘처럼 받드는 위민관(爲民官)이었다.

9월 20일 종영 예정인 이 드라마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우성룡은 청렴하고 공정한 관리였고, 백성편에 서서 평생 일해 온 인물이다. 노모가 돌아가도 황제의 성지를 지키느라 고향에 가지 못했고, 관리로서 21년간 근무하는 동안 고향의 가족과 떨어져 살며 임지(任地)의 백성을 보살폈으니 ‘멸사봉공(滅私奉公)’이 따로 없다. 그가 첫 벼슬길에 오를 때 노모는 자식이 관리가 돼 자신의 큰 꿈을 펼치고자 하는 뜻을 잘 알기에 ‘가문을 빛내라’ 하며 오히려 아들에게 힘을 보탰고, 마을훈장인 장인도 ‘공자 말씀’ 요약 서책을 선물하면서 백성사랑을 당부했으니 우성룡은 그들의 뜻과 자신의 웅지를 이루고자 ‘모든 희로애락을 백성들과 함께하면서 고장의 평화와 주민들의 안정을 도모해나가겠다’는 공직의 초심을 어디서든 이뤄냈던 것이다.

탁월한 관리의 상징인 ‘탁이(卓異)’를 세 번이나 받은 우성룡이 직예순무 직에 있던 강희 20년(1681년) 이월 초닷새, 강희황제는 우성룡을 공직의 사표로 삼기 위해 직접 불러 식사를 하사한다. 그 자리에서 황제는 우성룡에게 “당금청관제일(當今淸官第一), 실로 얻기 힘든 인물이다”라고 칭찬했다. 공직 초기나 말년의 고위직일 때도 잡곡과 쌀겨로 죽을 만들어 먹으면서 쌀 한줌도 아껴 백성들에게 배부하는 등 검소한 생활로 솔선수범을 보인 그였으니, 당대의 강희황제뿐만 아니라 오늘날 중국에서 후세들이 우성룡을 ‘천하제일의 청백리’로 받들만하다.

강희 20년 양강총독(兩江總督: 정2품) 자리에 올라 선정을 폈던 우성룡이 강희 23년(1684) 현직에서 병사했을 때 그가 남긴 재산이라고는 식사용 콩 몇 포가 고작이었고, 돈 나가는 물건이 없었다.

우성룡이 죽자 강희황제는 그를 위하여 ‘고행청수(高行淸粹)’라는 편액을 친히 써서 내렸고 ‘청단(淸端)’이라는 시호를 하사하는 한편, 제문을 작성하고 친필로 비문을 썼다. 그 후 옹정10년에 북경 현량사에 입사됐으니 그 사실만 보더라도 우성룡은 관리의 본보기였다.

“관리란 무릇 백성을 복되게 해야 한다”는 스승의 가르침을 좇아 우성룡은 평생의 공직에서  민생 편안을 위해 고행청수했던 인물이다. 비록 우성룡이 청나라 때의 청백리이긴 하나, 그의 백성 사랑과 청백리 정신만큼은 나라와 시대를 떠나 이 땅의 모든 공직자들에게 귀감과 교훈이 되기에 충분하다. ‘우성룡: 천하제일청백리’는 시사성이 매우 큰 한편의 감동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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