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스포츠에서 인종문제가 가장 잘 드러나는 종목은 남자 육상 1백m이다. 흑인선수들은 마라톤 등 육상 종목에서 대부분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 특히 1백m서는 단연 압도적이다.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 1백m서 지난 수십년간 흑인이 주류를 형성했다. 세계기록(9초58) 보유자인 우샤인 볼트(자메이카)를 위시로 해 상위권은 모두 흑인이 절대강자로 군림했다.

흑인이 단거리 및 중·장거리 등에서 강세를 보이는 것은 강인한 신체와 성공을 위한 치열한 도전 정신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국제스포츠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백인 및 황인종이 많은 노력을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흑인들에 비해 열등한 신체적 특성 때문에 힘들다는 ‘인종적 한계’를 꼽는 일부 스포츠 과학자들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육상 달리기에서 흑인의 우세가 절대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동안 나타난 각종 기록들에서 흑인들이 좋은 결과를 내 상대적으로 강하게 보였던 것뿐이지 절대적으로 흑인에게 유리하다고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단거리 육상에 최적합한 선수를 조기 발굴해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훈련을 시키면 얼마든지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할 수 있다. 

2007년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출간한 ‘검은 백조(The Black Swan)’에서 소개된 사례는 겉으로만 드러난 사실만을 갖고 일반화하는 오류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보여주었다. 1697년 호주 대륙에서 검은 백조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유럽 사람들은 모두 백조는 흰색이라고 생각했다. 그때까지 발견된 백조가 모두 흰색이었기 때문이다. 검은 백조의 발견을 통해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사실이 실제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자육상 1백m라고 결코 예외일 수는 없다. 사람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비흑인 선수도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있다.

지난 9일 일본 남자 단거리 유망주 기류 요시히데(21)가 후쿠이에서 열린 일본학생육상경기 학교대항선수권대회에서 일본 선수로는 최초의 9초대인 9초98의 신기록을 세워 비흑인선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세계 육상계에서 그동안 9초대 진입은 비흑인선수에게는 ‘마의 벽’으로 여겨졌었는데 이를 깬 것이다. 그는 지난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이토 고지가 세운 10초00을 0.02초 앞당겼다.

일본의 유력지 아사히신문 등은 이날 호외판을 내 9초대 달성 배경과 의미, 일본 1백m의 기록변화추이 등을 소개하며 의미를 부여했다. 일본 신문이 스포츠에서 호외판을 낸 것은 이례적인 일로 그만큼 취약종목으로 여겨졌던 육상 단거리에서 세계 정상권에 도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기대감을 드러낸 셈이다.

기류는 그동안 연습 경기서는 9초대를 작성하며 일본 단거리 대표주자로 자리 잡았다. 2년 전 미국 전지훈련에서 9초87을 기록한 바 있던 그는 지난해 리우올림픽 400m 계주서 제3주자로 뛰어 일본이 처음으로 이 종목 은메달을 따는 데 기여했으며, 올 세계선수권대회 400m 계주서도 동메달을 획득하도록 했다. 1m75, 69㎏의 그는 뛰어난 보폭과 중반이후 폭발적인 가속력을 발휘하는 게 강점으로 꼽혀 3년 후 도쿄올림픽에서 메달을 노리는 기대주로 꼽히고 있다.

기류에 앞서 9초대를 기록한 아시아 국적의 스프린터는 5명인데, 대부분이 나이지리아와 자메이카에서 태어나 귀화한 중동 선수들이며 순수 동양인으로는 중국의 쑤빙톈(9초99)이 유일하다. 한국은 김국영이 지난 6월 코리아오픈 국제육상대회서 10초07을 기록해 기존 자신이 보유했던 한국 기록(10초16)을 0.09초 단축시킨 새 한국 기록을 작성했다.

오래 전 수영, 테니스, 골프서 백인들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 종목서는 흑인들이 인종적 한계 때문에 성적을 내기가 어렵다는 ‘백인우월주의’가 지배를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테니스 윌리엄스 자매, 골프 타이거 우즈의 등장으로 잘못된 생각과 사고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일본 기류의 9초대 진입으로 불붙기 시작한 아시아 선수들이 세계무대에서 흑인의 벽을 넘어 검은 백조로 탄생할 수 있을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하겠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