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루터, 그는 이단인가 혁명가인가”
“마르틴 루터, 그는 이단인가 혁명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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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JTN아트홀에서 뮤지컬 ‘마르틴 루터’ 프레스콜 이 진행된 가운데 주인공 마르틴 루터 역의 배우 김수영이 열연을 펼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뮤지컬 ‘마르틴 루터’
16세기 면죄부 부당성 알리며
죽음 앞에서 정의 외치는 루터

[천지일보=이지솔 인턴기자] “구원은 면죄부로 될 수 없다. 선행으로도 될 수 없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

“교만한 이단자여 감히 하나님의 이름으로 반기를 드는가. 주님의 이름으로 너를 심판하겠다.”

서로 자신이 하나님과 함께한다고 주장하는 두 존재가 무대 위에 등장했다. 비텐베르크 마틴 루터 신부와 최고 권력자 자리인 마인츠 대주교 직책을 갈망하는 고위관직 가문의 자제 알브레히트다. 이들은 면죄부를 둘러싸고 논쟁을 펼쳤고 급기야 ‘이단’발언까지 나왔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해 마틴 루터의 일대기를 되짚어 볼 수 있는 뮤지컬 마르틴 루터 ‘이단인가, 혁명인가’가 찾아왔다. 뮤지컬은 마틴 루터의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됐으며 진정한 진리와 정의는 무엇인지 그 가치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신앙인들에게 깊이 있게 질문한다. 또한 진실에 마주했을 때 그 진실을 위해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지 묻는다.

16세기 초 유럽 전역을 뒤흔든 종교 개혁의 주인공 마틴 루터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대대적인 사업인 면죄부 판매의 부당성을 비난하는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대학 교회 문에 붙인다. 이것이 전 세계적으로 퍼져 유럽의 역사를 온통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게 된 종교개혁의 시작이었다.

한편 그 당시는 로마 가톨릭의 위세가 드높던 시기로 최고 권력자 자리인 마인츠 대주교 직책을 얻기 위해 푸거가문으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빌린 알브레히트는 빌린 돈을 갚고 자신의 힘을 유지하기 위해 성 베드로 성당 건축 비용을 마련 중이던 교황청과 결탁해 면죄부 사업을 확대한다.

기존의 면죄부는 속죄 행위를 통해 가벼운 죄를 면제해주는 관례였다면 알브레히트의 면죄부는 유가증권의 역할로 바뀌어 독일 전역에 시행되기 시작한다. 면죄부 판매가 점차로 교황청의 재정과 연관되더니 급기야는 그 효력이 연옥의 면제까지 확대돼 비싼 값을 지불한 만큼 그 크기의 죄가 감면될 수 있었다. 이에 부자들과 가난한 자들의 삶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러한 시기에 루터가 공부를 마치고 거리에 나왔을 때 거리의 시민들은 면죄부를 사려고 빚을 지고 착취와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이들은 신이 정말 있다면 우리는 왜 이리 비참하냐며 지옥보다 더 고통스럽다고 울부짖는다. 이를 본 루터 친구 유스투스는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며 이게 진리라고 말하지만, 루터는 외면할 수 없다며 당시로써는 용인되지 않은 개혁을 단행한다.

하지만 가뜩이나 가난에 시달리고 있던 독일인의 분노가 극에 달할 때 5년이 지나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괴로워하던 루터는 “인간의 영혼은 어떻게 해서 구원에 이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구원의 방법이 다른 곳에 있다고 확신한 루터는 성경을 읽다 로마서를 읽게 되고 “인간의 구원은 전적으로 신의 긍휼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라며 “면죄부나 선행에 의해서가 아닌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 받는다”고 믿는다.

루터는 1517년 10월 면죄부 판매의 부당성을 비난하는 95개조 반박문을 공표하고 “면죄부는 헛된 것, 우리의 착각, (면죄부를) 받고도 구원받을 수 없다”고 외친다.

그가 거리에서 외치자 거리의 사람들은 이단인지 혁명인지 혼란스러워한다.

이 일은 독일 전역에 파급됐고 면죄부 판매에 차질이 생기게 되면서 루터와 교황청은 전면적인 싸움이 시작된다. 알브레히트는 자신의 사업에 방해가 되는 루터를 제거하기 위해 루터를 라이프치히로 소환하며 일생일대의 격렬한 논쟁을 벌인다. 하지만 이 논쟁을 통해 루터의 개혁이 독일 전역으로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자 당황한 알브레히트는 루터의 주장을 이단설로 규정해 철회할 것을 명하고 급기야 루터를 죽이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루터는 “이 자리에 서 있겠다. 철회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집한다. 루터는 죽음 앞에서도 자신이 주장하는 정의가 옳다고 단언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루터와 같이 진실에 마주했을 때 그 진실을 위해 어떤 행동까지 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게 만든다.

이 뮤지컬은 지난 4월 대학로 상명 아트홀 1관에서 성황리에 초연을 마치고 재연을 올리게 됐다. 특히 이번에는 주한독일대사관 문화부가 후원을 결정해 외국인에게도 국내 순수 창작뮤지컬을 소개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마틴 루터는 1483년 아이스레벤에서 태어났다. 이후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황 레오 10세(1513~1521) 당시 그는 비텐베르크에서 성서학을 가르치는 교수 생활을 했다. 이 과정에서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만인성자교회 문에 로마 가톨릭 교회의 부패를 고발하는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해 종교개혁의 발단이 됐다. 특히 루터는 라틴어로 돼 있던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해 대중화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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