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관람객이 부블리 바르나(방글라데시) 작가의 작품 ‘현대 여성의 자기 분석-4’를 감상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중·일·한 작가 24명 160여점
내재된 여성성 다양하게 표출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급변하는 아시아권 현대 사회 속에서 여성은 어떤 존재일까. 시대의 흐름에 따라 남성과 여성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하고 있다. 아시아권 특유의 전통문화와 현대 문화 사이에서 자기실현의 욕구가 강렬하게 드러나는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됐다. 바로 전북도립미술관에서 개최한 아시아 현대 미술전 시리즈의 마지막인 2017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전이다.

전북도립미술관이 아시아현대미술을 주목하는 이유는 해방 이후 한국 사회가 겪어왔던 문제들이 아시아 전반적인 상황과 유사하고 같은 갈등․진통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전시에서 여성 작가들은 다양한 문제의식을 성숙하고, 독자적으로 드러낸다. 여성 미술가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페미니즘은 아니다. 아시아권 여성 작가들이 어떤 작업을 하며 내재한 여성성을 드러내는지를 살펴본다. 이 때문에 작품을 단순히 몇가지의 카테고리로 나누는 것은 무리다.

참여 작가들은 여성성을 중심으로 자신을 표출한다. 평면, 입체, 설치, 미디어 등 미술관을 가득 채운 작품들은 도발적이고, 획기적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디타 감비로 작가는 길이 2m 크기의 머리카락으로 뒤덮은 침대를 제2전시실 전시장 한가운데 전시했다. ‘머무름’은 매트리스 전체가 인조 머리로 뒤덮여 있고 철제를 덧대 흔들린다.

▲ 디타 감비로, 머무름, 인조 머리, 쇠, 파이프, 매트리스 90×200×90, 2012. (제공: 전북도립미술관) ⓒ천지일보(뉴스천지)

침대는 집안에서 가장 편하게 쉬는 곳이지만 어두운색과 머리카락의 질감은 생소하면서도 익숙한 모순적인 존재다. 이 작품은 ‘파나케이아-러쉬의 램니쓰의 분수’라는 노래의 가사와 구성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파나케이아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만병통치의 여신이다. 작가는 머리카락을 자아의 상징으로 사용했다. 머리카락은 신념과 지식, 기억들이다. 흔들리는 침대를 통해 마음속의 평온함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이 침대에 담겼다.

트랜스젠더인 퓨피루(일본) 작가는 자신의 신체적 변화를 담은 38장을 공개한다. 작품이 곧 삶의 기록이 되는 것.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넘어 존재하는 작가 자신을 자화상 시리즈에 담았다.

▲ 윤석남 작가의 ‘White Room Ⅲ-부활’.  ⓒ천지일보(뉴스천지)

한국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윤석남 작가는 1996년부터 제작한 ‘핑크 룸’ 대신 ‘화이트 룸’을 제3전시실에서 공개한다. ‘White Room Ⅲ-부활’은 화이트 룸 연작의 세 번째 작품이다. 다양한 무늬로 채워진 벽, 바닥의 조각들은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윤석남 작가는 인간의 삶을 ‘생과 사’로 나누고 생에서 죽음으로 가는 찰나의 지점을 상상하며 작품을 제작했다. 흰색은 무한한 공간을 말하고, 꽃은 죽음 이후 어떤 세계의 형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제4전시실에 들어가서 가장 눈에 띈 것은 안준 작가의 ‘자화상’이다. 커다란 버스가 새끼손가락만큼 작아 보이는 고층 빌딩에 오른 작가는 창밖으로 발을 내놓고 있다. 그 모습이 무섭기보다 오히려 평온해 보인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작가는 도시 고층 건물이나 절벽에 있는 모습을 스스로 찍는다.

▲ 안준 작가의 ‘자화상’. ⓒ천지일보(뉴스천지)

연사 모드의 셀프타이머를 설정해 초당 수장의 사진을 찍고, 사진은 메모리 카드를 가득 채운다. 수백, 수천 장의 사진 중 실제 작가가 겪은 공포가 아닌 평화, 경쾌함이 느껴진 사진을 고른다. 기존 사진이 기록적 수단으로 사용됐다면 그는 반대로 퍼포먼스를 통해 기존 관계를 역전시킨다. 작가는 경계에 놓인 자신의 몸을 통해 일상에서 끊임없이 마주하는 심리적 경계를 표현한다.

이하윤 작가는 아시아 전역의 주식인 쌀을 활용한다. 쌀은 번영과 다산, 행복의 상징으로 인간의 근본적 권리인 생명 유지를 위해 필수적이다. 이하윤 작가는 쌀 속에 묻힌 군중들의 모습을 통해 쌀과 생명 사이의 공생을 강조했다. 또 쌀 퍼포먼스를 통해 관람객과 소통하고 대화한다.

▲ 이하윤, 한 호흡-2, 혼합재료, 가변설치, 2017. (제공: 전북도립미술관) ⓒ천지일보(뉴스천지)

터키에서 온 여류화가 레만 세브다 다리지오을루 작가는 정체성에 대해 질문하는 작품을 다수 선보인다. 몸을 캔버스 삼아 성과 지역 문화, 사회성, 역사성 등 자신에게 둘러싸인 것을 드러낸다. 그리고 개인과 사회 간 차이가 무엇인지 질문한다.

전북도립미술관은 오는 12월 3일까지 아시아현대미술전 2017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전을 전북 전주시 완산구 본관에서 개최한다. 이 전시에는 아시아권 10개국 24명의 여성 작가가 160여점의 작품을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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