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의 원신연 감독이 4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천지일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천지일보(뉴스천지)

소설 40분 만에 읽고 영화화 결심
원작의 무게 오히려 즐기며 작업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책을 보신 분이라면 누구나 같은 생각을 하게 될 거예요. 과거 연쇄살인범이 알츠하이머라는 병에 걸린 설정이 영화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캐릭터여서 당연히 끌릴 수밖에 없었죠.”

속도감 있는 전개로 관객을 사로잡았던 원신연 감독이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으로 4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동명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을 40분 만에 독파하고 영화화를 결심했다는 원 감독은 장르의 귀재답게 원작이 가진 독창적인 재미에 영화적 요소를 더해 독특한 색깔의 범죄 스릴러 영화를 탄생시켰다.

개봉을 앞둔 4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원 감독을 만나 영화이야기를 들었다. 원 감독은 차분하면서도 진중하고, 반짝이는 눈빛으로 이야기했다.

“보통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는 영화는 주로 형사, 피해자 등이 범인을 응징하고 체포하면서 귀결되죠. 이 영화는 연쇄살인범을 쫓는 사람조차 연쇄살인범이에요. 이 두개의 구도가 긴장감을 유발할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연쇄살인범이 알츠하이머라는 치명적인 병을 앓고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의 기억을 쫓아가면서 그 사람의 시선, 기억에서 존재하고 발현되는 인물이 실존일까, 망상일까 하는 의문이 붙여지고 서스펜스가 극대화되죠.”

▲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의 원신연 감독이 4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천지일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천지일보(뉴스천지)

소설을 생각하고 영화를 보면 관객은 혼란스러울 수 있다. 이에 대해 원 감독은 “소설에 ‘오랫동안 혼돈을 들여다보면 혼돈이 나를 본다’는 표현이 있다. 병수라는 인물이 알츠하이머에 걸린 뒤 기억하는 것, 관객이 기억해야 하는 것, 기억하는 게 달라지는 부분이 생긴다”며 “혼란이 형성되면서 내가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영화가 나를 들여다보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 오게 된다. 병수가 겪는 엔딩과 반전의 시선을 관객도 어느 순간 받게 된다. 구조 자체를 그렇게 짰다”고 말했다.

“소설은 모범 답안, 정답이죠. 영화는 다른 정답을 제시하죠.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갖고 있던 기억이 전복되면서 새로운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반대로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으면 영화의 기억이 소설에서 전복되죠. 그런 배반의 재미가 극대화되는 영화예요. 영화와 소설이 하나이면서 다른 색다른 경험이죠.”

원작이 있는 작품을 영화화한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원 감독은 부담을 즐겼다. 그는 “원작이 주는 고통의 무게가 작품을 만드느냐 마느냐 하는 잣대가 되는데 저는 오히려 행복하고 즐기면서 작업했다”며 “엄청나게 고민하고, 공부하고,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즐거웠다. 원작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이 이야기에 숟가락 하나만 얹어도 진수성찬이 되는 느낌”이라고 회상했다.

스턴트맨 출신답게 액션은 CG를 사용하지 않았다. 김병수가 알츠하이머에 걸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과거 차량 전복 사고 씬은 360도 회전하는 카메라를 직접 제작해 차에 부착했고, 실제 운전자가 타서 운전했다.

원 감독은 “실제 운전자가 타서 전복되는 신이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차가 전복되는 신 중 가장 많이 회전하면서 구른 장면으로 꼽힐 것”이라며 “그렇게 눈앞에서 일어나는 사고를 보여줘야 김병수의 해리성 장애가 시작된 17년 전의 사건이 직접적으로 전달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날 것 같은 느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의 원신연 감독이 4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천지일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천지일보(뉴스천지)

원작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는 ‘병수’를 보며 배우 설경구를 떠올렸다. 원 감독은 “병수를 생각하니 깡마른 노인의 얼굴과 몸을 한 설경구가 생각났다. 굉장히 낯설고 거리감을 주는 불친절한 인간미를 머릿속에 그렸다”며 설경구를 떠올린 당시를 회상했다.

또 그는 “반면 병수라는 캐릭터는 기댈 곳이 전혀 없다. 이 캐릭터를 맡는 것은 육체적인 한계를 더 넘어 고통을 이겨야 하는 역경의 길을 걷는 것”이라며 “설경구라는 배우가 떠올랐지만 그동안 극한의 체중 조절을 많이 해서 다시 부탁드리기 죄송했다. 그래도 하고 싶어서 조심스럽게 주위를 돌았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원 감독은 이전에 친분이 있었지만 직접 섭외하지 못했다. 그만큼 조심스러웠다. 그는 “주변에 ‘형님 컨디션은 어떠냐’ ‘무슨 생각 하시냐’ 등을 체크하면서 계속 주의를 돌았다. 그러다가 제가 만나서 밥이나 먹자고 이야기를 했다”며 “시나리오를 가방에 넣고 근황을 이야기하다가. 캐스팅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그러자 설경구 형님이 ‘내 것이네’ 하셨고, 손으로 도장을 찍으며 계약했다”고 말했다.

이후 원 감독은 설경구에게 시나리오를 건넸다. 그는 헤어질 때가 새벽 2시였는데 시나리오를 드렸다. 5시 반쯤에 전화가 왔는데 ‘고맙다. 배우라는 직업이 소비되는 직업인데 변화를 끌어내는 감독을 만나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고 하셨다”며 “이기적으로 배우가 할 수 있는 거 다 몰아붙이라고 하시고, 소설책을 사러 가셨다”고 회상했다.

“설경구 배우의 연기적으로만 말씀드리면 연기를 보면서 감탄한 일은 없어요. 연기가 아니라 진짜니까. 현장에서 커트하는 것을 몇 번이나 잊어버릴 정도로 설경구 배우의 연기는 완벽했어요. 촬영하면서 처음 느낀 전율이 많았어요. 이제 설 배우님은 연기를 논하기엔 어떤 경지를 넘어서신 것 같아요. 제가 카메라 앞에서 4달 가까이 매일 보면서 느낀 결론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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