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조선 실학자 이익(李瀷)의 저서 성호사설에 ‘여국(女國)’이라는 재미난 기록이 나온다. 그는 직방외기(職方外紀, 명나라 때 이탈리아 선교사의 저서)라는 책을 인용, 여자들만 사는 나라로 ‘달단(韃靼)의 서쪽에 있었다’고 썼다.

달단은 몽고족을 지칭한 것인데 서쪽이라면 어느 나라에 해당하는 것일까. 그는 여국의 풍속을 다음과 기록하고 있다,

- 여국 풍속에는 봄철에 남자 한 사람만이 그곳에 오는 것을 허용했다. 아들을 낳으면 죽여 버렸으며 지금은 다른 나라에 병합돼 명칭만 남아 있다. 봄철에 들어오는 남자는 반드시 다른 나라에서 빌려 온 것으로 이는 한때의 습속일 것이다.…(하략) -

여국이 존재했던 지방을 실크로드인 카자흐스탄이나 혹은 터키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이곳 여인들은 실지 키가 크고 건강하여 한눈에 전사 같은 기운이 느껴진다.

‘여국’ 얘기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마존과 흡사하다. 아이를 낳으면 여자는 살리고 남자는 죽였다. 활을 쏘는데 방해가 된다고 오른쪽 유방을 잘랐다. 아마존이 여전사의 대명사로 불리게 되어 남미의 ‘아마존강’이란 이름도 생겨났다. 15세기 스페인 탐험대가 이 강에 처음 발을 들여 놨을 때 여전사들이 많았다고 하여 붙인 것이다.

고대 삼국시대 한반도에도 여전사들이 있었다. 남자 병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성을 지키는 여자들에게 남복을 입혀 전투에 참여 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북방 여인들은 강인해 이 같은 풍속이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김해 대성동 가야 고분군에서는 갑옷과 철제투구로 무장한 채 순장당한 20~30대 여성 유골 3구가 발견되기도 했다. 인골을 분석한 결과 다리근육이 보통 여성보다 훨씬 발달해 있었다.

김해 예안리 57호분에서도 여전사의 유물이 발견됐다. 그런데 이 여전사는 하급 전사가 아니었다. 출토된 유물 중 칼은 귀족이 아니면 소지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각종 마구류와 철촉, 철창 등 유물도 쏟아졌다.

철기 왕국으로 지칭되는 가야는 본래 상무정신이 투철한 나라였다. 신라 화랑도의 시원을 가야무사에서 찾아야 한다는 학자들도 있다. 즉 화랑을 만든 미시랑(未尸郞)이 가야 땅 웅천(지금의 창원) 출신이다.

미시랑은 얼굴이 준수했다. 왕명을 받은 진자대사가 미시랑을 웅천 수원사에서 발견하고 그를 가마에 태워 궁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얼굴에 분을 바르고 화려하게 단장시켜 화랑을 삼은 것이다. 당시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젊은 여성들을 뽑아 ‘원화’라고 이름 한 것을 보면 미시랑은 혹시 여전사가 아니었을까.

청주 초정약수터 뒷산 고성을 속칭 ‘구녀성’이라고 부른다. 이 성은 아홉명의 딸과 아들 하나가 내기로 쌓았다는 남매축성설화로 유명하다. 딸들은 모두 힘이 장사였으나 내기에 짐으로써 모두 죽임을 당했다. 구려(句麗, 고구려)라는 설화에 힘입어 ‘구녀’로 변한 것으로 해석되는데 성을 지킨 고구려 전사 가운데 실지 여전사가 많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신라 삼국통일 직후 당나라는 귀화한 말갈 장군 이근행을 시켜 20만 연합군으로 한반도를 침공했다. 이때 이근행의 부인 유씨도 갑옷을 입고 남편을 따라 참전한 것으로 나온다. 그녀는 벌노성 전쟁에서 군사들을 지휘 공을 세운 여전사였다.

최근 ‘여성도 국방의무에 동참하도록 법률이 개정돼야 한다’는 글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와 10만명이 서명했다고 한다. 현재 이스라엘, 쿠바, 노르웨이, 모잠비크, 수단 등 10개국에서 남녀징병을 실시하고 있다. 복지국가인 스웨덴도 여성을 징집하는 안이 의회에 계류 중이다.

우리 군에도 여군들의 숫자가 부쩍 늘었으며 야전에서도 중, 소대장직을 수행하는 육사출신 여장교들이 있다. 여군들은 매우 우수하며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출산율 저하와 더불어 여전사들의 시대가 급속히 도래할 것 같아 고사를 반추해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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